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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원효대사와 설총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3.17 09:32

   
▲ 신동정보작명연구원장
원효(元曉).
신라 진평왕39년에 경상북도 자인(慈仁)의 율곡(栗谷)에서 원효의 어머니는 남편 설담날(薛談捺)과 집으로 가던 길에 진통이 심해졌다. 다급한 남편은 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주위를 가리고 부인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어머니는 별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회임하고 태어날 때는 깃털 같은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명을 서당(誓幢)이라 불렀다. 승려가 되어 스스로 원효라 했으며, 호는 소성거사(小性居士), 시호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이다.
원효가 황룡사에서 원광과 자장스님의 뒤를 따라 머리를 깎고 불교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진덕여왕(4년)의 권위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의 불교학문을 배우기 위해 건너 갈 것을 결심 한다. 그러나 고구려의 보초병에 붙잡혀 귀국하게 됐다. 재차 시도했던 당나라 유학길. 주막집에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신 교훈으로 되돌아온다. 대국통(大國統)이란 중책을 맡아 황룡사 경내에 9층 석탑을 세운다. 무열왕의 부름에 왕궁을 찾은 원효는 작은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과부 요석공주 궁에 머물게 되고, 공주가 임신해 설총을 낳았다.
설총(薛聰).
신라 경덕왕 때의 학자이다. 아버지는 원효대사, 어머니는 요석공주다. 설총은 나면서부터 성품이 총명하고 영민해 총지(聰智)라 이름을 지었다. 배우지 않고도 도를 깨달았다. 신라의 삼문장(强首, 崔致遠, 薛聰)의 한사람으로 벼슬은 한림을 지냈고 경사에 능통해 이두(吏讀)를 만들었다. 신라에 한문이 처음 들어와 자기 나라 말로 경서를 해석해 읽을 때 설총이 처음으로 구경(九經; 詩, 書. 易, 春秋, 禮記, 儀禮. 周禮, 論語, 孝經)을 강론해 후학을 지도했다.
신문왕이 5월 중순 높고 통창한 집에 거쳐할 때 설총의 우화로 장미와 할미꽃의 이야기를 듣고, 왕은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벼슬을 내렸다.
<신동정보작명연구원 : 063-852-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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