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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지눌과 일연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3.24 09:24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지눌. 고려 중기 때의 고승으로 호는 목우자(牧牛子)이고,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며, 조계종의 개조(開祖)이다. 그는 황해도 동주, 서흥에서 정광우와 개흥군 출신 조 씨의 아들로 의종 12년에 태어났다.
지눌은 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말도 더듬거려 이름을 지눌이라 했다. 부모가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구해왔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는 “병만 낳게 해주면 아들을 부처에게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했다. 희한하게도 모든 병이 기적과 같이 나았다.
그는 8세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출가해 승려가 됐다.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참선해 선의 참 뜻을 깨치고 종전까지의 은둔생활을 떠나 적극적인 보살행으로 현실참여를 지양한다. 희종 원년에 송악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라 고쳤다. 승도를 소집해 법복을 입고 당에 올라가 설법을 하다 주장을 잡은 그대로 입적하니 탑을 세우고 감로(甘露)라 이름 지었다.
일연(一然).
고려후반기 희종 2년 경북 경산에서 김언필(金彦弼)과 이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회연(晦然), 자호는 목암(睦庵)이다. 일연의 어머니는 이상한 꿈을 꿨다. 둥근 해가 그의 방에 들어와 복부를 비췄다. 이런 일이 3일 밤낮 계속되더니 임신을 하게 돼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을 견명(見明)이라 했다. 그가 9살 되던 해에 무량사에 의탁했고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해 고승 대웅의 제자가 됐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삼중대사와 선사(禪師)가 됐다. 정림사로 거처를 옮겨 그 곳에서 대장경 주조 작업에 참여한다. 대선사의 승계를 받고 나라의 요청으로 지눌과 혜심의 법통을 이어 받는다.
1282년 충열왕의 부름으로 개경에 가서 원경충조(園徑冲照)라는 호를 받는다. 84세가 되던 해에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눈 다음 선상(禪床)에 앉아 홀연히 입적했다.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인각사에 탑을 세워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그의 저서는 100여권이 넘지만 모두가 분실되고, 오직 삼국유사(三國遺事) 한 권만이 남아 전하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 063) 852-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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