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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선덕여왕, 궁예의 이름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3.31 09:36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선덕여왕(善德女王).
신라 26대 진평왕과 마야부인 김 씨 맏딸로 태어났다. 성은 김이고, 휘는 덕만(德曼). 호는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善德)은 시호이다.
성품이 너그러울뿐더러 아름다워 이름을 덕만으로 지었다. 자매로는 천명공주와 선화공주가 있다. 진평왕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덕만에게 보인 적이 있는데 덕만은 이를 보고 “이 꽃은 매우 아름답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그림에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에 꽃씨를 뜰에 심었더니 아름다운 꽃은 피었으나 과연 공주의 말대로 향기는 없었다. 진평왕이 후사 없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옹립했다 한다. 647년 비담과 염종 등이 “여자 임금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하며 모반했으나 진압했고, 이해 왕은 죽었다. 특히 자장법사를 당에 보내 불법을 들여오고 황룡사 구층탑, 첨성대를 건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궁예(弓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 씨이고 아버지는 47대 헌안왕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궁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라 하고,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 외가에서 그가 출생할 때 지붕에 무지개처럼 광채가 뻗쳐 하늘에 닿으니 천문대 관리가 이를 보고 왕에게 “이 아이는 단옷날 태어난 것부터가 이상하고 나면서 이가 나 있고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있으니 나라에 큰 화근이 될 인물인즉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아뢰었다. 왕은 사람을 보내 죽이라 명하고 사신이 포대기 속의 아이를 꺼내 처마 아래로 던지니 유모가 황급히 끌어안다가 잘못해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었다.
10세가 된 궁예는 세달사(世達寺)에 중이 돼 스스로 선종(善宗)이라 했다. 그는 절을 떠나 도적 기훤의 무리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활을 잘 쏘는 사람의 후예” 라는 뜻의 궁예라 했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자 궁예도 송악에 후고구려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됐다. 그 후 궁예의 폭정으로 백성들은 등을 돌린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등이 왕건을 추대하고 궁예를 왕위에서 몰아낸다.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원장 : 063-852-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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