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안승웅의 이름이야기
안승웅의 이름이야기-강감찬·나옹화상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4.07 09:53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강감찬(姜邯瓚).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무관이다. 정종 3년에 강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은천(殷川)인데 못생기고 키가 유난히 작았으나 침착하고 의지가 강했으며, 학문과 지략이 뛰어 났다.
승주목사로 부임해 가는 김장길이 금주를 지날 때 큰 별이 떨어졌다. 그 곳을 낙성대(落星垈)라 부르고 있다. 문곡성의 기운을 타고난 이 아이가 크면 개경으로 보내라고 부탁한다. 17세에 아버지가 병사한 후 은천은 개경으로 간다. 김장길은 나라를 위한 큰 그릇이 되라는 뜻으로 강감찬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했을 때 강감찬은 홍화진의 삽교천에서 수중작전과 귀주에서 전멸한 ‘귀주대첩’은 유명하다.
문과에 급제해 검교태위문화시랑에 이르렀고, 작위는 천수현개국자작(天水縣開國子爵)에 봉해졌다. 무관으로 알려졌으나 문관출신 장군이며 문종대에 수태사겸중서령(守太師兼中書令)에 추증됐다. 84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 고려 후기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이름은 원혜이다. 거처하던 방 이름은 강월헌(江月軒)이라 하며, 속성은 아(牙)씨인데 영해부(寧海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구(瑞具)이며 어머니는 정 씨이다. 어머니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임신해 충숙왕 7년에 원혜를 낳았다.
원혜는 날 때부터 골상이 특출했고, 총명해 초명을 원혜(元慧)라 했다. 일설에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까치소라는 개울이 있는데 까치소 앞에서 관헌에 끌려가다가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고 낳은 아이를 개울가에 그대로 둔 채 예주부 관청에 끌려갔다. 부사가 옷자락에 묻은 피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연유를 물어보니 도중에 출산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 어서 돌려보내라는 사또의 엄명에 따라 그 곳에 돌아가니 아이는 죽지 않고 수 마리의 까치들이 애기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민왕의 왕사였으며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이고, 조선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 063-852-6523>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익산열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0-986 전북 익산시 목천로 283 201호(인화동 2가 90-3)  |  대표전화 : 063)858-2020, 1717  |  이메일 : ikopennews@hanmail.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 01281  |  등록일자 : 2013년 10월 17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조영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영곤
Copyright © 2022 익산열린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