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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 - 무학대사와 김시습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4.14 09:32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년 고려 말 무학의 속성은 박이요, 이름은 자초(自超), 호는 계월헌(溪月軒), 법명은 무학이다.
출생지는 경남 합천이나 충남 서산이라는 설이 있으나 자세한 기록이 없다. 무학이 출생했을 때 큰 학이  두 날개를 깔고 덮어 아이를 보호하고 있어 초명을 무학(舞學)이라 지었다. 18세에는 소지선사를 만나 머리를 깎고 출가 했다. 용문산 혜명국사에게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 금강굴을 찾아 수도했다. 공민왕 때에는 원나라 연경에서 인도의 고승 지공대사를 찾아가 불법을 배운다. 그 곳에서 나옹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두 사람은 3년 후 고려에 돌아왔다. 나옹은 공민왕의 왕사가 됐다. 나옹왕사로부터 수좌가 되기를 권유받았지만 무학은 거절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한다. 나옹왕사가 죽은 이 후 공민왕은 왕사로 책봉을 원했으나 무학은 끝내 거절했다. 이성계가 장군일 때의 일이다. 한창 거사를 계획하고 있을 무렵, 무학은 안변에 있는 토굴에 머물고 있는데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기 위한 교감을 나눈 곳이다. 이곳에 훗날 석왕사(釋王寺)라는 절을 지었다. 조선을 개국한 뒤에 무학은 왕사로 책봉돼 한양으로 천도 한다.
김시습(金時習).
조선 초기. 신동으로 알려진 그는 세종대왕 17년에 성균관 북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 어머니는 울진 장 씨다. 자는 열경(悅卿)이고, 호는 설잠(雪岑), 청한자(淸寒子), 매월당(梅月堂), 벽산(碧山), 청은(淸隱), 동봉(東峯), 췌세옹(贅世翁)이다. 김시습이 태어나기 전날 밤 성균관 유생들이 그의 집에서 공자가 태어나는 꿈을 꿨는데, 다음날 그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이웃에 살던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지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겠느냐(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논어에서 시와 습을 따서 작명을 해주며, 잘 가르쳐 크게 만들어 보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한다. 시습은 태어난 지 여덟 달부터 글을 알았고, 세 살 때에는 시를 짓고 소학을 읽고, 그 뜻을 알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렀으며, 10대에는 학문에 몰두했다. 20대에는 세상을 한탄해 천하를 떠돌아 다녔으며, 30대에 세상에 돌아왔으나 현실을 비판하며 수도에 정진하다가 무량사에서 58세로 생애를 마쳤다.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 852-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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