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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장보고·백결선생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5.07 09:40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장보고(張保皐).
통일신라시대의 무장으로 780년대 후반에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기골이 장대하고 활과 창을 잘 다루는 무인 기질을 타고 났다. 초명에는 궁복(弓福), 궁파(弓巴)라 불렀는데 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뜻이 같은 정년(鄭年)을 만났다. 서로 무예와 씩씩함을 비교하면 장보고가 정년에게 조금 뒤졌으나, 정년은 장보고를 형으로 불렀다.
장보고와 정년은 당나라 서주에 함께 갔다. 장보고는 무령군 소장에 올라 말을 타고 창을 썼다. 이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가 된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분개해 벼슬을 사직하고 귀국한다. 해적들의 인신 매매 행위를 금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해로의 요충지인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항만 시설을 보수해 전략적 거점을 마련 한다. 왕의 명으로 청해진대사에 임명된다. 흥덕왕이 죽은 후 왕위 계승에서 물러난 우징(祐徵)이 청해진에 오자 이를 맞아 들였다가 이듬해에 장보고의 군사지원을 받아 김우징은 왕위에 오른다. 신무왕이 죽은 후 문성왕에 의해 진해장군(鎭海將軍)이 되고 딸을 왕의 차비로 삼으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이 거짓 항복해 오자 그를 맞아 들였다가 피살 됐다.
백결선생(百結先生).
신라 자비왕 때 거문고의 명수로 경주의 낭산마을에서 살았다. 가난해 옷을 백 군데나 꿰매어 마치 메추리를 달아 놓은 것과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동리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해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며 희로애락의 모든 불편한 심사를 거문고에 실어 위안을 받았다.
섣달 그믐날 이웃에서곡식을 찧으니 그의 아내가 방아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곡식이 있어 방아를 찧는데 우리는 없으니 어느 세월을 보내겠소”했다.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무릇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이 내리는 것인데 오면 막을 수 없고 가도 쫒을 수 없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상심하는가? 내가 그대를 위해 방아소리를 내어 위로 해주리라”했다. 이에 거문고를 타고 방아소리를 내니 세상 사람들은 대악(大樂)이라 했다.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 852-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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