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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왕인박사와 초의선사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5.26 09:59

   
▲ 신동정보작명연구원장
왕인박사(王仁博士).
백제 제14대 근구수왕 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서 태어났다. 왕인의 아버지가 길가에 늙은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부축해 물로 입을 축여주니 회생했다. 노인은 “귀한 아들이 태어날 것인즉 천을 귀인의 별을 타고 나올 것이다. 그 별은 길신 중에 길신으로 장차 어진 인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질 인(仁)을 취용해 왕인이라 이름 지었다. 8살 때에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제에 입문해 유학과 경전을 수학했다. 문장에 뛰어난 왕인은 18세에 오경박사(五經博士)에 등용됐다. 제17대 아산왕 때 일본의 응신천왕의 초청으로 왕인박사는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영암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때 함께 도일한 사람들은 재봉(裁縫), 직공(織工), 야공(冶工), 양주자(釀酒者), 도공(陶工), 안공(鞍工), 화원(畵員), 금공(金工), 의사(醫師), 등이었다.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했다. 기술과 공예를 전수해 백제의 문화를 일본 고대문화발달에 공헌한다.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년 조선정조 10년에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장(張)씨이며 자는 중부(中孚), 법명은 의순(意洵), 초의, 호는 해옹(海翁), 해양후학(海陽後學), 일지암(一枝庵), 우사(芋社), 자우(紫芋), 초사(艸師)라고 한다. 초의의 가계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가 큰 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고 한다. 15세에 나주군 다도면(茶道面) 운흥사(雲興寺)로 찾아가 벽봉스님께 의지해 중이 되고 다도와 불경을 익힌다. 해남 대흥사의 완호(玩虎)스님을 만나 구족계를 받았으며, 다도에 심취한 그에게 초의(草衣)라는 호를 내렸다. 초의는 경전을 배우면서 틈틈이 범자를 익혔고, 탱화를 잘 그려 당나라 오도자(吳道子)의 경지에 이르렀다. 24세에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정약용을 만나 사귀면서,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으며, 다도를 익혀 선경(禪境)에 들어 운유(雲遊)의 멋을 누렸다. 39세에 일지암을 중건했다. 이 암자는 초의선사가 은거하였던 곳으로 스님의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한 곳이자 차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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