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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 세종대왕(世宗大王)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6.16 09:24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태조6년 한양의 북부 준수방에서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 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종은 두 아들을 얻고 공주를 원했지만 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막동(莫同)이라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성년대군을 얻었다.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는 네 아들 다음 공주만 4명을 낳아 4남 4녀를 두었다. 세조의 자는 원정(元正)이고, 휘는 도(祹)이며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묘호는 세종인데, 세종대왕이라 부른다.
세종은 천성이 총민하고 호학불권해 밤낮 독서에 전력했다. 태종 8년, 충녕군에 봉군하며 태종 13년에는 대군이 되고 1418년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맏형인 양녕대군이 탈선 된 행실이 잦아 신하들이 문제를 삼게 된다. 태종도 참다못해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는다. 동년 8월에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왕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은 학자적 성격을 가진데다 중국의 여러 운서를 연구해 학문적인 조예가 깊었다. 경학, 주자학과 성리학 혹은 사학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해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수문관, 집현전, 보문각 등을 정비한다.
세종은 문화 사업으로 명나라의 홍무정운의 영향을 받아 언어 정책 시정을 꿈꿨다.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최항 등을 뽑아 한자음을 개혁해 발음표기의 부호를 연구한다. 1425년 12월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한다. 의사청에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선로, 이개, 강희안을 불러 원나라의 고금운회거요란 운서를 한글로 달아 운해언해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세자 진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참여했다.
집현전의 최고직인 부제학 최만리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해 한자음을 개혁한다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여 한글반대상소를 올렸으나 세종은 최만리의 무리들에게 한글 개혁의 타당성을 얘기하고 문초를 했다. 세종은 한글을 기본으로 1429년에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을 발표했다. 한글은 한자음과는 별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니 영원히 불멸할 업적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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