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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한문학자 최치원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6.30 10:25

   
▲ 신동정보작명연구원장
신라 말기의 학자로 헌안왕 원년에 서라벌 사량부에서 태어났다.

세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견일(肩逸)은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를 창건하는데 관여했다. 최문헌 전집에는 최치원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여 금돼지(金猪)에게 납치됐다가 그로부터 10개월 후에 낳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강보에 싸인 그를 멀리 무인도에 버렸다. 그곳에서 선녀들이 그를 키웠다. 그의 부모는 기이하게 여겨 다시 그를 찾아 길렀는데 이름을 치원이라 했다. 자는 외로운 섬에 구름이 쌓여 고운(孤雲), 해운(海雲)혹은 해부(海夫)라 한다.

최치원은 재능이 뛰어나고 학문을 좋아 했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치원은 유학한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사랑 배찬이 주관하는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했다.

선주표수현위(宣州漂水縣尉)가 되어 벼슬길에 오른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고병의 종사관이 돼 토황소격문(討黃巢格文)을 지어 평정에 큰 공을 세웠고 이로써 그의 문장력은 천하를 감탄시켰다.

29세에 신라에 돌아온 최치원은 헌강왕에 의해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에 임명됐다. 진성여왕 8년에는 시무10조를 건의해 국정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아찬(阿湌)에 올랐으나 정치적인 개혁은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은퇴의 길을 택하게 된다. 관직을 떠나 태수를 지냈던 여러 고을을 돌아보고, 명승지인 금오산과 청량사, 해인사, 쌍계사를 비롯해 영월대와 해운대를 거쳐 임경대, 학사루를 유람한다.

여기 저기 바람과 구름처럼 해변을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떠다니며 어느 때는 우거진 숲속에서, 어느 때는 강기슭에 집을 짓고 화초를 가꾸며 그 속에서 시를 짓고 소일한다.

만년에는 가족을 모두 이끌고 가야산에서 여생을 보내다 고려광종2년에 95세로 선화(仙化)했다. ‘삼국사기’에는 고려왕건에게 서한을 보내 “계림은 시들어 가는 누런 잎이고 계경의 곡령은 푸른 솔”이라는 구절로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새로 일어 날 것을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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