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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동방의 주자 안 향(安 珦)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7.14 09:32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고려후기의 명신이자 학자로, 문종의 이름을 피하고자 초명의 유(裕)로 쓰게 된다.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인데 주희의 호인 회암(晦庵)에서 따온 것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글 읽기에 힘쓴 안향은 18세 때인 원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량(敎書郞)으로 관직을 시작했다. 상주판관과 국자사업을 거쳐 좌승지에 이른다. 유학제거사가 되어 쇠퇴일로에 있던 성리학과 국학의 발전에 기여 한다.
충렬왕 12년에 왕과 공주를 호종하고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학 서적을 수입해 연구, 전파 했다. 그 후 밀직사사, 삼사좌사 등 관직을 역임한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행동경유수, 집현전 태학사, 계림부윤, 감수국사를 거쳐 첨의시랑찬성사, 판판고사사가 됐다.
안향은 문교의 진흥을 위해 육영재단인 양현교를 설치했으며 국학대성전을 낙성해 공자의 초상화를 비롯, 제기 악기와 육경 제자 등의 서적을 구입 비치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추앙 받게 됐다. 성리학은 인재를 양성해 자기를 수양하고 공경과 성실을 기본으로 예절과 신의를 지키며 도덕적 일상생활을 회복하는데 노력했다. 이색, 정몽주, 길재, 정도전 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고려사’에는 “안향은 사람됨이 장중하고 침착하여 사람들이 모두 공경했다. 재상으로 있을 때 정책을 잘 계획하고 판단하니, 동료들이 순순히 따르고 감히 다투지 않았다. 유학을 일으키고 선비 양성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비록 사직하고 집에 있어도 늘 마음은 잊지 않았다. 빈객을 좋아하고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며, 문장은 맑고 굳센 것이 볼만 하다”라고 했다.
안향은 충렬왕 32년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64세였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한국의 최초 백운동(白雲洞) 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을 모시고자 세운 것으로 이황에 의해 소수소원(紹修書院) 이라는 명종의 친필 사액이 내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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