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안승웅의 이름이야기
안승웅의 이름이야기-승려 시인 한용운(韓龍雲)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7.21 09:27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 원장
학문이 깊은 승려이자 시인이며 지조 높은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명은 백옥처럼 고와서 정옥(貞玉)이라했다. 아명은 유천(裕天), 불가에 입적해 계명은 봉완(奉玩)이다. 법호는 만해(萬海)이며, 법명은 평소 용운으로 부른다.
6세에 성곡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9세에 ‘서산기’, ‘통감’, ‘시경’에 통달해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했다. 14세에는 전성숙과 결혼했다. 의병에 가담했으나 관고들의 습격으로 실패하고 법주사, 백담사 등을 전전하다 연해주까지 간다. 26세에 고향에 돌라온 그는 맏아들 보국을 낳는다. 을사조약 직후 홍성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나 아버지 한응준이 의병에 의해 살해됐다. 그해 27세 때에 백담사에서 연곡(連谷)을 은사로해 승려가 됐다. 영제선사에 의해 수계하고 능엄경, 원각경을 수료하고, 일본에 건너가 조동종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공부한다.
33세 때 만주로 망명, 독립군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키고 전국 각 사찰을 순회하며 강연을 한다. 이후 수년 간 불교활동에 전념해 대장경을 열람했으며,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주력한다.
조선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제 ‘조선불교 유신론’을 저술했다. 36세 때에 ‘불교대전’과 함께 청나라 승려 내림(來琳)의 증보본에 의거하여 ‘채근담’ 주해본을 저술했다. 또한 문학적 소양을 지닌 한용운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불멸의 ‘님의 침묵’과 ‘유심’을 창간해 발행인이 된다.
민족자존의 독립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한다. 불교계의 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참여해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지도자들과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옥고를 치뤘다. 그는 옥중에 수감돼 일제의 회유를 물리치고 추상같은 절개를 지켰다.
55세에 유숙원과 재혼해 딸 영숙을 낳았다. 그는 창씨 개명과 조선인학병 반대운동을 펴는 등 잠시도 쉬지 않았으며, 영양실조를 견디지 못하여 66세의 나이로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입적했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익산열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0-986 전북 익산시 목천로 283 201호(인화동 2가 90-3)  |  대표전화 : 063)858-2020, 1717  |  이메일 : ikopennews@hanmail.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 01281  |  등록일자 : 2013년 10월 17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조영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영곤
Copyright © 2022 익산열린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