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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 -조선의 문신학자 서거정(徐居正)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7.28 09:34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서거정. 세종 때 태어나 무려 여섯 임금을 섬기고 집현전 출신의 학자로 45년간을 육조와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 오르는 당대 대각(臺閣)문학의 학통을 확립한 정치가요, 문인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서미성(徐彌性)이고 어머니는 권근의 딸이다. 거정이란 이름은 바르게 살라는 뜻으로 춘추의 공양전에 군자대거정에서 따온 것이다. 자는 강중이며, 호는 정정정, 사가정이고 시호는 문사이다. 명문대가 출신으로 현과에 네 번이나 합격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수, 유방선한테서 한문을 배워서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성명, 풍수까지 관통했다. 특히 시문과 글씨에 능해 수많은 문학저술을 남겼다. 세종 20년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 식년문과에 급제해 사재감직장에 제수 됐다. 집현전 박사를 거쳐, 문종 1년에 부교리에 승진한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해 집현전이 혁파되자, 성균사예로 옮긴다. 조맹부의 ‘적벽부’ 글자를 모아 칠언절구 16수를 지었는데 세조가 이를 보고 감탄했다. 이조참의로 중국에 갔을 때 통주관에서 안남사신을 만나 시재를 겨뤄 주위 사람들이 탄복했으며, 요동의 구제는 그의 초고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1465년에 예문관제학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고, ‘경전대국’찬수에 참가한다. 성종 1년에 달성군에 봉해지고 좌참찬에 복배된다.
우찬성에 올라 ‘삼국사절요’를 공편했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다는 이른바 삼국균적을 주장했다. 이듬해 도총관을 거쳐 대제학을 겸직하고, 병조판서에 이어 좌찬성에 이른다. 세자이사를 겸직하면서, ‘동국통감’ 57권을 완성한다.
45년간 조정에 봉사하고, 많은 저술에 관여하는 등 혼신의 노력으로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을 편찬한다. 개인 저술로는 ‘역대연표’, ‘동인시화’, ‘태평한화골대전’, ‘필원잡기’ 등 우리 문학사에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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