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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패션리더 ‘김형윤 양복점’추억의 그때 그곳(16)- 멋쟁이들 30년 유행명소 ‘김형윤 양복점’
우창수 기자 | 승인 2014.10.16 13:33

1970~80년대 중평거리 패션리더
43년 맞춤양복 장인 김형윤 대표 한땀 한땀 직접 수공 인기
30년 단골 여전 기성복에 싫증난 젊은이들 발길도 이어져

   
 
중평거리(중앙동~평화동) 한복판에 자리한 ‘김형윤 양복점(☎856-7689).’ 처음에 ‘윤테라’라는 상호를 쓰던 김형윤 대표(61)가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간판을 내건 ‘맞춤양복점’이다.

중평거리에서만 30년째 맞춤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1970~80년대 패션리더로 꼽힐 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전북을 넘어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양복기술자로 43년 간 재단부터 가봉, 완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모두 직접 하는 ‘맞춤양복 장인(匠人).’

김 대표가 만든 옷은 멋쟁이들 사이에서 최고로 쳤다. 곧바로 유행이 되기도 했다. 맞춤양복이 잘 될 때는 기술자 6명을 데리고 있을 정도로 잘 나갔다.

김 대표는 “양복기술자면 어디에서나 대접을 받았다. 딸을 며느리로 주겠다고 할 정도로 돈깨나 버는 직업이었다”며 지그시 미소 지었다.

중앙동에만 150곳이나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맞춤양복점은 점차 기성복에 밀려 현재 중앙동에 3곳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3곳의 양복기술자 중에서도 직접 수공을 하는 유일한 장인이다. 예전만큼 호황은 아니지만 한 땀 한 땀 정성들이는 그의 기술에 여전히 멋쟁이 단골들이 찾고 있다.

특히 기성복에 싫증난 젊은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나에게 꼭 맞는 체형,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양복을 갖고 싶은 마음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맞춤양복 바람이 불고 있다.

때문에 김 대표와 30년 함께한 가위와 자 등 도구는 먼지 쌓일 일이 없다. 많지는 않지만 일감이 끊이질 않아 김 대표는 맞춤양복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가격이 위아래 정장 40만 원부터로 예전 그대로다. 1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유명브랜드보다 절반 값이고, 특히 원단도 최고급 브랜드만 쓴다”면서 “일주일 간 제작해 만든 맞춤양복은 손님 누구나 ‘질감이 좋고 몸에 꼭 맞아 편하다’며 좋아하신다”고 자랑했다.

(사)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익산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한 김 대표. 전국에서 알아주던 중앙동 패션의 거리 부활을 꿈꾸며 오늘도 맞춤양복을 만들고 있다.

/우창수 기자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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