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폭염 힘없는 부채질만
80대 노인 10여명 창문 없는 3평 남짓 좁은 집서 더위와 씨름
공중화장실 변기 고장 생활고도 겹쳐 숨 막혀… ‘복지사각지대’

털털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마저도 더운 공기만 내뿜고 있었다. 힘없이 부채질하는 안순례 할머니(82)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인화동 평동로 15길에 있는 ‘창고마을.’ 일제 당시 곡식창고와 가마니 공장이 있던 자리에 1945년 해방 직후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 모여 살게 된 ‘쪽방촌’이다. 안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60년째 살고 있다.

면적 2천 평 규모의 이 마을은 제이파크 아파트와 스파랜드 사이에 가려져 외딴섬이나 다름없다.

3갈래로 난 100여m 골목길은 사람 한명 겨우 지날 정도로 비좁다. 이런 길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30여개 집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50~60년대 판자촌을 방불케 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안 할머니와 같은 처지의 80세 이상 홀로노인 1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3평 남짓한 집은 창문도 없어 햇볕 한줌,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는다. 집안 곳곳에 핀 곰팡이는 눅눅한 냄새를 풍겨댄다.

찜통지옥이나 다름없는 좁은 방안은 낡은 선풍기로는 더위를 식히기가 역부족. 힘없는 부채질로 열대야를 보내는 노인들의 이마엔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흐르고 있다.

집안엔 화장실도 없어 노인들은 인근 동이리경로당 옆 공중화장실을 이용한다.

가로등도 많지 않아 한 밤중엔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100여m 떨어진 화장실을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화장실 변기도 고장 난 게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집도 감사(?)하다는 김금순 할머니(83)는 7년 전 이 마을로 이사했다.

매달 나오는 노령연금 20만 원을 아끼고 아껴 1년에 60만 원의 사글세를 내고 나면 ‘쌀 살 돈’도 빠듯하다. 하루 세끼를 챙겨먹기도 힘든 형편.

최외순 할머니(82)는 12살때 친정부모와 함께 이 마을에 정착했다. 일본 오사까로 강제 징용됐던 부모가 해방 직후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집 한칸 마련할 돈도 없었기 때문.

여기에서 결혼도 하고 4남2녀를 기르며 70년째 살아온 최 할머니는 “대부분 자식을 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해 노령연금으로 살고 있다. 매달 쌀이나 김치, 휴지 등을 살 돈이 모자라 동이리경로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10여명 노인들의 더위쉼터이자 끼니를 해결해주는 동이리경로당. 올봄엔 냉장고가 고장 나 비상이 걸렸다. 익산시에서 새로 들여놓아주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라며 노인들은 애만 태우고 있다.

이처럼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는 노인들에게 박승조 22통장(63)과 부인 최점순 인화새마을부녀회장(61)은 큰 버팀목이자 위안이다. 자그마한 일도 척척 해결해주는 ‘동네 맥가이버’이기 때문.

집수리(?)며 눈이 어두워 글을 못 읽는 노인들에게 우편물을 읽어주기도 하고, 7년째 1년에 3번 식사도 대접하며 친부모처럼 돌본다.

올해는 연막소독기를 인화동사무소에서 빌려와 수시로 방역한 덕분에 파리, 모기 한 마리 없는 마을을 만들었다.

노인들은 “통장 부부가 아들 내외처럼 편하다. 인정 넘치는 부부 덕분에 마을 사람 모두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통장 부부는 “물질이나 마음으로 정성을 쏟을 생각이지만,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노인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자그마한 성원이라도 보내준다면 노인들에게 큰 기쁨과 위안이 될 것”이라고 시민들의 후원을 당부했다.

후원문의 박승조 통장 ☎010-9699-3294.

/우창수 기자

사랑이 꽃피는 마을 만든 만능해결사

박승조 22통장(63)과 부인 최점순 인화새마을부녀회장(61)은 11년 전 군산에서 인화동 익산농협 맞은편 상가로 이사했다.

아침 운동 삼아 주변을 산보하던 부부는 창고마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익산에 쪽방촌이 있을 줄 몰랐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로와도 같은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쪽방촌 노인들에게 “가재도구 등이 고장 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때부터 부부는 마을의 만능해결사가 됐다. “수도가 고장 났다”며, “TV가 안 나온다”며, “우편물 좀 읽어 달라”며 도움을 청하는 노인들이 줄을 섰다.

부부는 7년 째 어버이날, 복날, 연말 등 1년에 3번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중복날인 지난 7월 23일에도 동이리경로당 40여명 노인들에게 닭백숙을 해드렸다.

5년 전부턴 22통장을 맡아 95세대 주민을 살피고 있다. 그 중 15세대 홀로노인은 친부모처럼 극진히 섬긴다.

올해엔 동사무소에서 연막소독기를 빌려와 사비로 연료비를 들여가며 수시로 방역해 파리, 모기 없는 마을을 만들었다.

통장을 맡은 후엔 창고마을의 환경도 좋아졌다. 공동으로 수도요금을 내던 노인들은 2년 전 수도관이 파열된 후 집집마다 개량기가 따로 놓아져 생활비 부담을 덜게 됐다.

화재 방재 취약 지역인 이 마을은 지난해 소방도로가 나면서 그나마 안전해졌다.

주민들은 “통장 부부 덕분에 22통 지역 전체가 인정 넘치고 사랑이 꽃피는 마을이 됐다”며 “마을 사람 모두의 든든한 희망지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창수 기자

3갈래 골목길은 성인 한명 지나기도 비좁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죽 늘어선 창고마을 전경.

집안 곳곳에 핀 곰팡이.

동이리경로당 옆 공중화장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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