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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전문가 최명오의 황칠이야기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5.12.07 09:26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 황칠요리전문점 명아우리 대표

우리나라의 황칠은 진상품과 조공 물품에 빠지지 않는, 말 그대로 최고였다.
조선 중기 때는 관리들의 수탈이 매우 심했다. 중국의 조공 요구와 조정 공납을 감당하느라 마구잡이 벌목이 끊이지 않았다.
악목이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던 나무조차 도끼 세례를 받았을 정도다. 그 이후 토종 황칠나무는 점차 모습을 감췄다.
몇 년이 지나 일제강점기 떄도 수탈은 이어졌다. 모습을 감췄던 황칠나무가 자생했지만 그마저도 일본인들 손에 들어갔다.
한국 사람이 황칠나무 잎만 따도 잡아갔다고 하니 우리 백성들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한다는 제주도 도민들이나 완도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계곡에만 남아 있다.
그나마 15년 이상은 자라야 채취가 가능해 대량생산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황칠나무는 점차 우리에게서 잊혀져갔다.
황칠은 무병장수를 꿈꾸던 진시황이 찾아다닌 전설의 불로초로도 알려져 있다. 진시황이 신하 서복에게 어린 남녀 수천 명과 황금을 주며, 멀리 동쪽(지금의 한국)으로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했다. 불로초가 무엇인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불로초를 황칠로 추측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밝혀낸 황칠나무의 효능은 항암, 항당뇨, 항고혈압, 항염증, 뇌경색치료, 뼈성장 촉진, 면역력 개선 등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또 정혈, 혈액순환, 간기능 개선, 신경안정 등의 효능이 있어 건강식품, 화장품, 기능성 음료 등에 응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황금빛 천연도료로서 최고급 가구에 사용할 수 있다.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이 2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도료가 있을까 싶다.
<황칠요리전문점 명아우리 : 858-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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