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숲 자연학교 대표

지난번 토성에 이어 여산으로 향하다.

제일먼저 가람 이병기 생가의 200년 정도로 추정되는 탱자나무를 상면하다. 운향과인 탱자나무는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담장에 심어져 있어 가시에 찔려 제법 아픔을 주었던 나무다. 탱자나무는 트리폴리아타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trifoliata는 ‘잎이 세 개’라는 뜻인데 아마도 열매보다는 잎을 더 강조했기 때문에 붙여진 학명일 것이다.

향기가 고혹적인 탱자나무에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바로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는 탱자나무를 비롯해 산초나무, 황벽나무 등 운향과 식물을 먹고 자란다. 노오란 알이나 새똥 모양을 한 애벌레, 5령 때의 뿔각과 머리 뒤에 귀여운 뱀눈이 있는 호랑나비를 운이 좋으면 이 탱자나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람 이병기생가의 탱자나무는 지난 2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호랑나비의 한살이를 지켜봤을까. 앞으로도 더 많은 호랑나비의 한살이가 펼쳐질 거라는 예감을 하며 여산 향교를 경유해 여산 동헌으로 출발하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지난 번에 전교(傳敎)를 받자오니, ‘개화(改火)784) 의 법은 경외(京外)가 같지 아니하니, 금후로는 옛 제도를 따라 시행(施行)하라.’하였으므로, 삼가 《주례(周禮)》를 안험하니, ‘사관(司爟)이 행화(行火)785) 하는 정령(政令)을 맡아, 4시(四時)로 국화(國火)를 변화시켜서 때때로 퍼지는 질병을 구원하였다.’하고 그 주(註)에 이르기를, ‘봄에는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柳]에서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棗]와 은행나무[杏]에서 불을 취하며, 하계(夏季)에는 뽕나무[桑]와 산뽕나무[柘]에서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갈참나무[柞]와 느릅나무[楡]에서 불을 취하며, 겨울에는 느티나무[槐]와 박달나무[檀]에서 불을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경중(京中)은 옛 법을 준용(遵用)하되 외방(外方)은 봉행(奉行)하지 않으니, 청컨대 금후로는 경중은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불을 본조(本曹)786) 에서 받아 5부(五部)에 나누어 주게 하고, 외방도 또한 이 예(例)를 따르게 하여, 여러 고을로 하여금 집집마다 나누어 주는 것을 일제(一齊)히 거행하게 하여, 어기는 자는 과죄(科罪)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실록 13권, 성종 2년 11월 10일 무신 2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여산 동헌에서는 600년 된 고목인 느티나무를 만나다. 정자나무 중 최고로 삼던 느티나무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에서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됐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느티나무는 신령스러운 나무, 즉 신목이라 불리며 무더운 여름에 시원함을 우리에게 준다.

여산면 경로당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무더위쉼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다. 동헌 옆에는 천주교회의 아픈 역사가 있는 백지사터가 있다. 그 둘레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짐작컨대 이 느티나무들이 동헌과 백지사터의 역사를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을 것이다.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 중 몇 그루는 너무 오래된 노목이라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치료한 자국이 있다. 이러한 노목의 썩은 부분을 치료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발코트라는 소독제를 발라준다. 다음은 나무들과의 친화성이 좋은 참나무 종류의 수피를 잘게 부순 것과 EPONS라는 수지형에 폭시 접착제를 섞어 메워 준다. 그리고 겉면은 석회나 시멘트로 마무리하는데 요즘은 인공수피로 마무리하고 있다.

발코트를 바르는 이유는 보통, 나무는 4Cm이상을 자를 경우 그냥 두면 그곳을 통해 수분이 증발하면서 나무가 말라간다. 전에는 석회와 유황을 섞어서 메꾸기도 했는데, 유황은 살균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메꿈보다는 고목나무는 자연조건에 잘 적응해 지금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어쩌면 나무의 가장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공부분을 인공적으로 메우면 외관상으로도 보기에 좋지 않고, 동공인 썩은 부분을 인위적으로 긁어내면 오히려 나무가 지탱하는데 지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나무는 속의 목질부분이 썩어 비어져 있어도, 껍질부위의 관다발이 살아있으면 나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비용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동공인 현 상태로 놔두는 것이 고목의 자연스러운 정취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추위를 극복하고자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 땔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마을 입구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베어내지 않았다. 그 나무들이 지금의 고목으로 우리에게 경외심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예전 사람들은 혹한에도 불구하고 왜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을까? 아마도 마을 입구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게 누군가는 소망을 빌어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현재 처해진 형편을 이야기 하며, 각자에게 안식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 간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줘 소통의 역할을 해줬다. 백지사터의 느티나무는 그러한 역사를 함께 해온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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