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숲 자연학교 대표

왕궁면과 여산면에 이어 구룡마을 대나무 숲을 가다.

구룡마을 대나무 숲은 담양의 대나무 숲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대나무 숲이라 늘 궁금했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최종병기 활’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고, 담양의 대나무 숲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담양 대나무 숲처럼 화려하게 잘 가꿔놓은 느낌은 없지만 키도 크고 대나무 수도 많아 고요하면서도 대나무들만의 원시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대나무는 나무일까, 풀일까? 이름에 ‘나무’가 붙어 나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대나무는 풀이다. 나무와 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풀은 키가 큰 대나무, 왕호장근, 해바라기 등도 있지만 대개는 나무보다 크지 않다. 그리고 나무에 있는 목질부가 풀에는 없다. 따라서 풀은 나무와 달리 줄기가 녹색을 띤다. 무엇보다 나무와 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겨울눈이다. 잎겨드랑이에 겨울눈이 있으면 나무이고, 없으면 풀이다. 풀 중에 간혹 눈처럼 보이는 것도 있으나 그것은 겨울눈이 아니라 새로운 잎이 나올 눈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게 된다.

하지만 나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나무만의 전략은 대단하다. 강한 바람에 부러지지 않기 위해 속을 비웠다. 속을 비우니 키가 크기 어렵다. 그래서 대나무가 택한 전략은 마디를 만드는 것이다. 마디가 있기 때문에 강한 바람에 부러지더라도 마디 부분이 부러져 그 아래는 보존할 수 있다. 그 지점에서 새싹을 내기도 한다. 바람에 강하고 키도 클 수 있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대나무만의 전략이다.

대나무는 우리 삶에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첫째,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나무와 관련한 설화 중 아주 유명한 것은 신라 제48대 경문왕과 관련한 대나무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죽을 즈음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모자를 만드는 장인은 혼자 평생 비밀을 안고 살아야 했던 부담감을 이 대나무 숲에서나마 풀 수 있었다. 대나무 숲은 그에겐 유일한 힐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둘째, 옛 어른들은 죄를 지은 사람이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쫓지 않았다 한다. 잘려진 대나무에 찔리면 상처가 심하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은 어쩌면 죄보다도 사람을 우선시해 이런 지혜를 남겼나보다. 대나무가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신율(申慄)이란 자는 판서 신점(申點)의 손자이다. 남이 대신 지은 글로 급제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지는 않았으나 사류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아 조정의 여망이 매우 가볍자 항상 앙앙불락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봉산 군수가 되어서는 군에 좀도둑이 많자 율은 하나하나 끝까지 체포하여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는데, 심지어는 대나무 못으로 열 손가락의 끝을 찔러 자복을 받아냈다. 작은 절도도 반드시 큰 도둑으로 몰아 조작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이 때에 와서 김경립(金景立) 등을 체포하였는데, 당초 어보(御寶)와 관인 그리고 문서 위조에 불과한 것을 율이 밤을 틈타 경립을 어르고 협박하니 경립은 사지에서 목숨을 구하려고 드디어 그의 사주에 따라 대장이 있다느니 장수를 정했다느니 서울을 범하려고 했다느니 등의 말을 했는데, 모두가 황당하고 두서가 없었다. 그러나 율은 모두 주워 모아 장계에 포함시켜 대역(大逆)으로 보고하였다.

-광해군일기[중초본] 50권, 광해 4년 2월 15일 경진 12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 40년

셋째, 중국 제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였던 장예모 감독의 영화 연인의 대나무밭 전투 신이다.

관군과 메이의 대나무밭 전투장면은 색채미가 뛰어났던 장예모 감독의 매력을 그대로 입증해주었다. 여름을 상징했던 대나무는 초록색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을 대표하는 것 중 또 하나는 매미소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매미소리가 없다면 덜 덥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매미소리가 있어야 여름이지 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새소리 같은 애매미나 참매미의 세레나데는 사람인데도 귀가 즐겁다. 하지만 말매미의 떼창은 귀가 쟁쟁해서 정신이 달아날 지경이다. 빨리 짝을 구해야 하는 절박함을 알기에 미워하지는 않지만, 약충과 성충시절 모두 나무를 가해하기 때문에 나무를 사랑하는 입장의 사람들에겐 그다지 예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매미의 애벌레는 종류에 따라 땅속에서 3, 5, 7, 11, 13, 17년 동안 나무나 풀뿌리의 수액을 먹고 살다가 땅속 밖으로 나와 2~4주 동안 나무줄기에 대롱 같은 입을 꽂아 수액만을 먹으며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애벌레들이 땅속에서 사는 주기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1과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숫자인 ‘소수’이다. 땅 위에 올라왔을 때 가급적 자신의 천적을 만날 확률을 줄이고, 서로 다른 매미 종류들끼리도 동시에 올라오는 확률을 줄이다보니 땅속 생활이 점점 길어졌을 텐데 애벌레들이 땅속에서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지내면서 어떻게 시간을 체크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 없다.

시인 이완규님은 매미는 울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언제나 슬픈 표정을 한 사람들이 유정무정의 생명들을 슬프게 우는 것으로만 바라보고 규정해버리니 세상만사가 슬플 뿐이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살아있음의 경이로운 기쁨은 피안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며….

매미는 웃으며 짝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 매미 웃음소리는 유난이도 더웠던 올해의 여름이 지나감을 알리는 무더웠다는 여름 흔적의 소리이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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