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 초등학생 위해 세운 통학로 예산 모정 설치로 바뀌어

학부모 “고생한 보람 없이 일부주민 반대로 무산… 반납해야”

영등 제일3차아파트 후문쪽에서 한 아이가 횡단보도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좁은 인도에 사람들이 밀집돼 차도로 달려오는 모습이 위험천만하다. /사진제공= 입주민 이모 씨.

1천177세대가 거주하는 영등 제일3차아파트가 내홍에 휩싸였다. 어린 학생을 둔 젊은 입주민들과 나이 지긋한 입주민들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일고 있다.

평화롭던 영등 제일3차아파트가 주민갈등이 생긴 배경은 젊은 입주민들이 어린 자녀들의 안전한 통학로 조성을 위해 어렵게 따낸 예산이 노인들이 주로 쉬는 ‘모정’을 설치하는 예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입주민 이모 씨(39)로부터 들은 사정은 이러했다. 영등 제일3차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수는 무려 400여명. 가까운 백제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 800여명의 절반이 넘는다.

학생들은 매일 우남샘물타운아파트 방향으로 난 후문을 통해 백제초로 등교할 때마다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무려 400여명의 학생들이 이른 아침에 차들이 수없이 오고가는 후문을 지나고, 성인 2명이 비켜 지나기도 버거운 좁은 인도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젊은 학부모들은 지난해 학생들이 후문으로 50m이상 돌아서 가는 불편도 없애고, 사고 위험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했다. ‘영등장로교회’ 앞 사거리 횡단보도로 곧장 통하는 ‘쪽문’을 내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익산시로부터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에 반영돼 1천300만 원의 사업비도 따냈다. 사업 공식명칭은 ‘단지 내 도로정비 공사’였지만, 실제 사업은 ‘통학로 조성’이었다. 횡단보도 앞 담장 일부를 철거해 쪽문을 내고, 화단에 길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

지난 5월경 공사설계도까지 나왔고, 공사금액이 부족해 전북도로부터 200만 원의 추가 예산을 따왔다.

총 1천500만 원의 예산으로 진행하려던 통학로 조성은 일부 나이 지긋한 입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유는 ‘자연훼손’과 ‘범죄우려’였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화단에 길을 내면서 나무를 옮겨 심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오전 8~9시까지만 쪽문을 개방하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통학로 조성은 전체 주민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됐다.

젊은 학부모들이 어렵게 따낸 1천500만 원의 통학로 조성 예산은 지난 8월 주민과반수 동의를 얻은 끝에 ‘모정 설치’로 사업이 변경됐다.

입주민 이 씨는 “어린 학생들 안전을 위해 통학로 조성하는 것보다 노인들 쉬는 모정이 더 중요한지 참으로 말문이 막힌다”며 “1천500만 원은 영등 제일3차아파트 쌈짓돈이 아니다. 당초 사업 목적이 상실된 만큼 반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산시는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은 이른바 ‘시의원 재량사업비’여서 솔직히 제재하기 어렵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정식으로 사업계획서를 낼 때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주민 과반수 동의로 결정된 만큼 예산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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