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링크사업단 홍보담당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이른 바, ‘호통판사’로 유명한 부산가정법원의 천종호 판사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학교폭력으로 법정에 선 가해학생들에게 일갈해 유명해진 말이다.

그는 어느 학생을 심하게 구타하고 돈을 갈취한 가해학생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은 거짓된 모습에 격하게 꾸짖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10대 사기범에게 “엄마, 사랑해요”를 10번 외치게 해 법정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진심이 없는 사과는 실체가 없지만 상대방의 눈과 표정, 그리고 어투와 톤으로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가령, 김종민(가명) 씨가 운전을 하던 중 뒤에서 운전해오던 이희수(가명) 씨가 아차 하는 순간에 차를 박아버린 상황이라 가정하자. 이때, 이 씨가 미안한 표정과 어투로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조는 바람에 그만 실수를 범했네요”라며 사과를 한다면 그의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이 씨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팔짱을 끼며 “아이고, 거 미안하게 됐수다, 큰 사고 아니니 피차 명함 받고 갈 길 가시죠”라고 한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사과에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멱살 드잡이로 시작해 “당신의 자제분은 특정업계에 종사하고 계시겠군요”나 “당신의 부모님은 집에 안녕히 잘 계십니까?”를 매우 거칠게 바꾼 비속어의 향연으로 이어져 결국 경찰서로 가는 비극을 낳기 쉽다.

진심이 하나도 없는 사과는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화약의 폭약을 가득 실은 기차가 이리역(현 익산역)을 지날 때 그 어마어마한 폭발사고가 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익산은 한국화약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 다행히도, 이번에 양 기관 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이후다.

위안부 합의도 같은 선상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하여 받은 10억 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재합의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처음부터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양국 간의 이러한 실랑이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 그래서 진심이 하나도 없는 사과를 필자는 상황 모면을 위한 꼼수라 부르고 싶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었으면 속죄를 해야 하는 거야. 큰 죄를 지었으면 크게, 작은 죄를 지었으면 작은 속죄를….” 속죄에는 진심어린 사과 또한 포함된다.

오늘날 우린 세상살이 중 죄를 짓거나 잘못을 했음에도 사과 없는 이들의 부끄러운 말로를 보았다. 성공만이 죄와 잘못을 감추는 수단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그 부끄러운 말로를 맞는 이들의 대부분이다.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발병문제는 반도체 여성노동자가 백혈병 위험 2.5배라는 진실을 남겼다. 손에 쥐어질 급여와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버틴 이들의 건강과 성과를 바꾼 그 회사는 여전히 백혈병과 다수의 공정과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수감된 재벌총수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물론,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 혹은 속죄를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상황에서 둘러대거나, 외면하거나, 잔인한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오히려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은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다.

모든 이가 ‘나는 꼼수를 부리는 걸까?’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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