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고등학교장

요즘 세대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세대에게 학교 단축마라톤 대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까까머리에 흙먼지 뿌옇게 피어오르는 비포장도로를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던 추억 말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교통량이 많지 않아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생들도 몸집은 작았지만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해서 지금 학생들보다 기초 체력은 더 양호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는 마라톤에 대한 상식이 없던 때여서 그랬는지 흔히 물에 적신 손수건을 입에 물고 달리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신발이나 복장도 달리기에 영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 즐거운 행사 중 하나였다. 친구들과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운동장에 들어설 때면 힘은 들었지만 커다란 숙제 하나를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시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학교는 혼잡한 교통 때문에 그리고 혹시 모를 불미스런 사고를 생각하여 이런 단축 마라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학창 시절 달렸던 마라톤 대회는 그야말로 희미한 추억의 한 페이지 속에 묻혀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달리 당시 로마인들이 신체 단련에만 치중하는 세태를 못 마땅히 여긴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가 정신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일갈하였다지만, 건강을 잃고 정신까지 피폐해져 우울증까지 겪는 경우와, 운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생활에 더욱 열정적으로 매진하게 되는 경우 등 우리 삶에서 신체 건강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참 많다. 특히나 수험생들에게 체력은 매우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기나긴 수험 생활에서 건강한 체력을 가진 학생이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시 외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십분 살려 3년 전부터 단축마라톤을 실시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0여 년 전에도 체육 대회 기간에 동문마라톤클럽의 협조를 얻어 단축 마라톤 대회를 서너 차례 실시한 적이 있으니 끊어진 명맥을 다시 이었다고 해야겠다.

학년 초부터 교육계획서에 날짜를 정하고 이 행사를 대비해 체육과 선생님들은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귀공자들이 줄지어 운동장을 서너 바퀴씩 돌게 한다. 이렇게 기초 체력을 다져 놓으면 평소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행사 당일 우리 귀공자들은 답답한 교실 안에서 학습에 지친 심신을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가뿐하게 회복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체력 증진과 맑은 인성 함양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함께 달릴 수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며 달린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은 각자 감독 장소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교통 흐름을 통제하면서 행사에 참여한다. 이처럼 귀공자 단축 마라톤 대회는 선생님과 제자들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의 의미도 큰 행사다.

교문을 나서 툭 트인 들판을 지나고 연초록 향연이 펼쳐지는 미륵산 탑천 길을 따라 약 5km를 달리는 코스는 아주 이상적이다. 나도 우리 귀공자들과 함께 멋진 레이스를 펼쳐보련다.

이번에도 역시 익산경찰서에서 순찰차를, 원광대학교 병원에서 구급차를 지원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안전을 책임지고 봉사하시는 일선 행정 기관 담당자들에게 학교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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