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경 소극장 아르케 객원연출

작품을 연습하다 보면 여러 가지 기억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또한 상대 배우와 맞춰 나가야 하는 부분도 말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연습 했던 장면이었는데도 전혀 생소한 느낌이 들 때는 정말 내 기억의 한계에 원망이 생긴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 한편의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친구는 연극에 대한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 내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소리가 작은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맡은 배역이 느끼는 감정을 찾기 위해서,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나가기 위해서⋯. 이 모든 과정이 기억과의 싸움인 것이다.

사실 연출을 하면서 배우들을 볼 때 ‘이거 하나만 터뜨려 지면 이 작품을 통해서 한 단계 성장하겠구나’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연습 중,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감정의 봇물을 터뜨려야 자신이 맡은 역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박연수다. 성격도 화끈하고, 운동도 잘 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을 가진 인물로 작품을 맡은 배우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다. ‘잘 할 수 있을까? 중간에 못 하겠다고 그만 두는 것은 아닐까?’등등.

그런데 연습이 거듭 될수록 소리가 커지고, 움직임도 커지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하나씩 맞춰 나가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연 날!

첫 공연 치고는 정말 별 무리 없이 공연을 마쳤다. 그런데 두 번째 공연에서 갑자기 주인공역을 맡은 친구가 순간 대사를 놓치고 그 바람에 다른 배우들도 순간 멈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바르게 끼워 질 수는 없기에 그날 공연은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게 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주인공역을 맡은 친구는 다른 선배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차피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기름을 부을 필요는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는 추억 쌓기야. 나도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데. 그때는 누가 어떤 말로 위로해도 귀에 들리지 않더라고. 그러다 보면 다음 공연에 지장을 주게 되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나의 삶에 굉장히 즐거운 추억으로 저장되더라고. 그러니깐 너도 실수 할 때마다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말없이 듣고 있던 그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실수는 ‘추억쌓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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