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소속 52세 젊은 피 관리자 취임 학생 특성에 맞는 교육 기대

“민주주의가 살아있고, 학교자치가 정착되는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목표

전북대 ‘기린극회’ 출신 연극인…익산 용제동 태생 원광고‧전북대 졸업

78년 전통의 이리공업고등학교가 변화의 새바람을 맞고 있다.

신선한 변화의 물결 진원지는 김기옥 교장. 사상 첫 공모제로 뽑힌 52세 전교조 출신 젊은 피다. 지난 9월 1일 취임했다.

학교 담장을 타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6일 오전 11시 이리공고 교장실. 김 교장과 인터뷰를 하기위해 마주 앉았다. 교장 취임 축하인사를 나누고 본격 취재에 나서려고 취재수첩을 여는 순간. 결재를 받으려던 교사들이 쉴 틈 없이 들어왔다.

교사들의 설명을 한참 들은 후 김 교장이 던진 한마디.

“꼭 서면으로 결재해야 합니까? 전자결재로 대신 하면 안 될까요?”

교사들의 잡무를 줄이고, 서류 간편화를 위한 배려에서 나온 발상이다.

교사들과의 대화에서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물씬 엿볼 수 있었다.

교복 담당 교사에겐 “학생들이 우리 학교 교복을 마음에 들어 합니까”라며 학생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은연 중 표했다.

학생 해외연수 담당교사와의 대화에선 ‘해외연수 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학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동의서를 앞으로 받지 말라고도 했다.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학교 책임’이라는 게 김 교장의 소신이다.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 또한 과거 권위주의에 찌든 일부 교장하곤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순간, 뒤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교장 선생님 파이팅!”  “와! 우리교장 선생님 신문에 나온다.”  “멋있게 잘 좀 찍어주세요.”

김 교장은 삼삼오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쳤다. 일일이 응답하는 모습이 5일전 취임한 교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한 사제지간이었다.

#옛날 배가 다닌 용제동‘배못’ 태생

김 교장은 익산이 고향이다. 옛날 배가 다닌 용제동 LG화학 앞 이제마을 태생이다. 옛날에 배가 다녀 ‘배못’이라고도 불린다.

아버지 김진태 씨(88)와 어머니 송종섭 씨(84) 사이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목수이자 보일러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일을 다녔다. 이를테면 ‘꼬마 보조 예비기술자’인 셈.

하지만 일보다는 책을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힘들지만 기꺼이 따라 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한 그는 보일러를 고치러간 집에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이때 주로 읽었던 책은 계몽사 동화문집.

보조 잡부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막을 내렸다. 학교에 번듯한 도서관이 있어 마음껏 빌려 볼 수 있었기 때문. 내친김에 그는 도서부에 들어가 여태껏 보지 못한 책을 실컷 읽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을 때는 밥도 먹지 않고 밤을 새기 일쑤였다.

“학창시절에 책을 갉아 먹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아버지가 책을 사주지 않아 주로 빌려 보았다. 형‧누나들의 교과서를 볼 정도로 글자로 된 것을 모두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엔지니어 아버지의 피 이어받아 기계과 진학

학교는 대보름 행사가 열리는 동네에 자리한 석암초와 이리초, 이리남중, 원광고를 다녔다.

청와대 정무수석인 한병도 전 국회의원이 고교 1년 후배이고,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익산시장 경선에 참여한 전완수 변호사가 원광고 28회 동기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전북대 공과대 정밀기계과에 입학했다. 고교 성적은 480명 중 100등정도.

애초에 대학은 갈 생각이 없었다. 현장 일이 좋아 지금의 알바 식으로 돈벌이를 해 굳이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특별히 대학의 꿈도 삶의 목표도 없었던 그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한 이는 2,3학년 담임을 맡았던 김은식 선생님. 졸업 후 취직 걱정 없는 공대에 들어가라고 원서를 써주어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이 돼버렸다.

#연극으로 시작해 연극으로 끝난 대학시절

대학시절 공부는 남의 이야기였다. 연극에 빠져 무대의 바다를 헤엄쳤다. 84학번이 92년에 졸업했으니, 군 생활까지 합쳐 무려 9년간 연극에 미쳤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전북대 연극반 ‘기린극회’에 들어갔다. 기린극회는 전북 연극계의 산증인이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어 연극을 선택한 그는 점차 연극의 매력에 매료됐다. 당시 시대 상황이었던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배우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얼굴과 연기는 어느 정도 됐지만, 182cm 큰 키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주로 연출과 기획을 맡았다. ‘바리케이트’와 ‘길을 가는 사람들’이 그가 연출한 작품이다.

지금 텔레비전 드라마에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배우 전진기 씨가 연극반 동기다.

#준교사 자격증 시험 합격 교사의 길 입문

대학 졸업 후 연극계 주변을 맴돌던 그는 생계가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준교사 자격증 시험이 생겨 교사의 길을 열게 됐다.

1995년 임용고시에 합격한 그는 1997년 장계공고 자동차과 교사로 첫 교단에 섰다. 그리고 삼례공고와 이리공고에서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니 가르쳤다기 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줬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는 대안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대안교육기관인 꿈누리 교실 초대 팀장으로 일했다. 전국 최초 공립대안중학교인 전북동화중학교를 설립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전교조 활동 ‘성장의 배경’

그는 1999년 두말할 것도 없이 전교조에 가입했다. 깊은 철학보다 교사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그는 “전교조는 독특한 노동조합이다. 일반적인 노조는 노동법에 명기된 임금과 복리후생을 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전교조는 태생이 정책과 교육철학의 신념을 근거로 한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노동조합이다. 추구하는 욕망과 의식이 다르다. 매력적이고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 장수지회장과 익산중등지회장, 전북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 전국직업교육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도 활발히 참가했다. 사회공공성 공교육강화 익산연대와 익산비상시국회의 세월호 촛불집회 진행, 익산청소년문화축제 조직위원장 등 항상 학생들의 곁에 자리했다.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 전교조 활동을 꼽았다. 수많은 워크숍과 연수, 그리고 세미나를 통해 젊은 지식인들과 새로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을 인정해주는 교육을 하자!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2년이 남는 무려 22년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그는 좋은 교사는 아니었다고 겸손해 한다. 그저 아이들과 열심히 같이 있어주고, 아이들 느낌을 캐치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한 교사로 남고 싶어 한다.

그의 교육철학은 ‘결을 인정해주는 교육을 하자’다. 아이들 개개인의 성격과 삶의 이력인 ‘결’을 발견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라고 믿는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수업시간은 기본이고, 실업계고교 특성상 전국기능대회 선수 육성을 위해 학교에서 아이들과 살다시피 했다.

삼례공고와 장계공고에선 취업담당 교사로 아이들의 진로를 고민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한 농기계수리 봉사와 4-H 활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불안하지 않고 안전한 학교’ 꿈꾼다

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첫 공모제 교장에 뽑힌 그는 학교 관리자로서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불안하지 않고 안전한 학교’를 꿈꾼다.

학교 운영 큰 그림도 그렸다. 그가 밝힌 청사진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학교 ▲학교 자치가 정착되는 학교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 등 세 가지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 삶의 공동체와 동떨어진 교육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학교 교육이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 마을학교 등을 활성화 시켜 아이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50점’ 당구 실력 수준급…만능 스포츠맨

182cm 훤칠한 키에 군살하나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즐겼으나 지금은 당구를 주로 한다. 3구 20점을 유지한다.

좌우명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글‧사진 황정아 기자

황정아 기자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