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애벌레숲 자연학교 대표

가을로 넘어가는 처서가 되면 ‘이젠 살았구나’싶어도 날씨 걱정거리가 또 있다. 바로 ‘가을 태풍’이다. 가을 태풍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해 피해가 심하다. 태풍이 지나간 후의 흔적들을 미륵산 둘레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아직 덜 여문 씨앗이나 열매가 떨어진 흔적을 보며 1년 동안 씨앗을 맺기 위해 많은 것들과 싸운 나무의 수고로움이 안타깝다.

식물에게 있어 씨앗은 자신의 DNA를 남기는 아주 중요한 생존수단이다.

이 세상에는 진짜 나무를 의미하는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나무 앞에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가 들어가야 정확한 식물명이다. 쌍자엽식물인 조록나무아강, 너무밤나무속 또는 참나무속인 참나무 6종류의 나무는 각각 특징을 갖고 있지만 공통점은 열매이다.

도토리는 떡갈나무 열매를 의미하고, 상수리나무 열매는 상수리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이 산에 피난 왔다가 수라상에 이 열매로 만든 음식이 올라왔다 해서 상수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토리는 이 상수리나무 열매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토리를 좋아하는 동물들은 많다. 다람쥐, 들쥐, 너구리, 멧돼지, 심지어 곰까지도. 도토리거위벌레처럼 아예 이름에 도토리가 들어가는 녀석도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도토리먹보는 조류인 어치이다. 어치는 하루에 자그마치 100~300개의 도토리를 땅속에 저장한다. 다람쥐는 겨울 식량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도토리 껍질을 벗기고 땅속에 묻고, 청서는 4~10cm 깊이로 파고 도토리를 묻은 다음 낙엽으로 덮는다.

이들이 미처 찾아 먹지 못한 곳에서 이듬해에 싹이 나는데, 다람쥐나 청서의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후각도 발달해서 숨겨둔 것을 잘 찾아 먹는다고 한다. 기억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땅속은 습도가 높은 데다 낙엽이 보온 효과를 발휘해 도토리가 싹을 틔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이렇듯 숲에 사는 동물들과 도토리는 참나무를 키워내는 공생관계인 셈이다.

나무와 참나무는 무엇이 다를까? 나무라는 보편성은 같지만 참나무만의 특수성이 있다. 열매로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고, 다른 나무보다 단단해서 참나무 숯을 만들면 깡깡 쇳소리가 난다고 한다. 1,000℃ 이상으로 쇠를 녹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대장간에서 참나무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원소주기율표 중 원자번호 6번인 C(탄소)에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1798년 영국의 화학자 스미스슨 테넌트(1761~1815년)은 다이아몬드를 금속관에 넣어 연소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여기에서 생긴 이산화탄소의 양을 통해 다이아몬드와 숯이 같은 탄소임을 증명했다.

가을은 색의 향연의 계절이고,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숲에선 동물들이 겨울을 준하는 시간이다. 동물들이 도토리를 키우고, 도토리가 동물을 키워내는 것처럼, 나무 중에는 참나무가 있고, 사람 중에는 참사람이 있듯이, 익산의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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