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선농수로 유휴부지 산책로 조성에 5천만 원 예산 올려

주민 “실효성 전무 행정력 낭비 사업계획 즉각 철회해야”

깨밭에서 수확이 한창인 농민이 지난 23일 밤 익산시가 산책로를 조성한다며 박아 놓은 말뚝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지난 23일 밤 8시, 목천동에 사는 김모 씨(54)에게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자네 아버지 밭에 누가 말뚝을 가지고 다니면서 박고 있네.”

수화기로 들려온 목상리 사는 어르신의 말은 떨렸다. 예전에도 여러 번 농작물 도둑을 맞은 적 있는 김 씨는 곧장 밭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도둑이 아닌 말뚝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서 온 사람인데 왜 오밤중에 와서 남의 마늘밭을 밟고 다니며 말뚝 박습니까?

“설계사무실에서 측량하러 나왔습니다. 시간이 없어 그렇습니다.”

-시간 없으면 훤한 낮에 와서 하지 왜 한밤중에 합니까?

“낮에 와서 (말뚝 박게)하면 하게 해주시렵니까.”

다음날 아침 밭에 나온 주민들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국유지이지만 아무런 통보도 없이 하룻밤 사이에 빨간 말뚝 수십 개를 밭에 박고 간 것이 괘씸하기도 했다.

문제의 장소는 목천동 목상교 아래 대간선농수로 옆 유휴부지.

주민들에 따르면, 이 유휴부지는 20여 년 전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수로 공사를 하면서 생긴 땅이다. 당시 폐 콘크리트 등 폐기물이 매설돼 버려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주민들은 풀밭으로 변한 이곳에 흙을 메우고 개간해 밭을 만들었다.

20년 간 평온하게 농사짓던 주민 30여 가구는 갑자기 말뚝 박힌 사연을 알고 나서 기가 막혔다.

지난해 초 정헌율 시장이 29개 읍면동 주민간담회 할 때 목천동 주민 한 명이 “평화육교 아래 농수로 옆에서 목상교까지 ‘산책로’가 이어지다가 그 아래로는 끊겼다”며 “주민 30여 가구가 농사짓는 땅에 산책로를 조성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난데없이 측량 말뚝이 박힌 것이었다.

익산시 관계자는 “주민요구로 한국농어촌공사와 협의해 기본적인 사업계획은 세웠다. 하지만 아직 사업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 주민협의가 이뤄지면 추진할 계획”이라며 “우선 측량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산시가 세운 기본계획 사업명은 ‘목천동 산책로 조성.’ 대간선농수로 옆 구간 895m에 폭 3m의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내년 본예산 심의에 사업비 5천만 원을 요구한 상태다. 사업이 익산시예산심의와 익산시의회를 통과하면 내년에 산책로에 사리부설 등 골재를 깔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목천동 복수의 주민들은 “도대체 누굴 위한 산책로냐”며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주민 박모 씨(60)는 “혈세낭비다. 기존 농수로 옆에 조성된 산책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 아래 농사짓는 주민들뿐이다.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산책로를 잇겠다며 아까운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정이나 다름없다. 즉각 사업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씨는 또 “주민 한 사람 의견만 듣고 전체 주민의견 수렴 없이 사업계획을 세운 것도 문제다. 익산시는 실효성 없는 이 사업을 철회해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3일 밤 박힌 빨간 깃발 말뚝.

지난 23일 밤 말뚝을 박으면서 마늘 밭을 밟고 다닌 흔적.

대간선농수로 옆 유휴부지 아래에는 폐콘크리트 덩어리 등 폐기물이 잔뜩 묻혀 있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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