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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 시의원, 구도심 일원 도시재생 컨텐츠 찾아 '분주'중앙 평화 인화 마동 지역구 초선 시의원
우창수 기자 | 승인 2019.04.15 10:10

바쁜 의정활동 속에 발품 팔며 익산시 근대문화역사 자료 수집 구슬땀

나루토여관‧중앙대 이리분교 교사‧이리 비행장 등 수십 건 찾아낸 열정파

“시민들 자긍심 갖도록 책 발간하고파…자원 활용 문화관광 발판 마련”

‘행운의 사나이.’

‘지옥과 천국을 오고간 천운을 타고난 인물.’

‘박빙의 승부사.’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장경호 시의원(53‧중앙 평화 인화 마동) 앞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장 의원은 1표차 낙선 공식 발표 후 다음날 새벽녘 재검표 끝에 2표차로 당선의 영광을 얻은 기적의 주인공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 의원의 당선 사연은 연일 전국 뉴스를 장식했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초년생이지만 일약 전국적 인물로 떠오른 것. 초선 시의원이 3~4선 못지않게 익산을 제대로 알리고 시의회에 입성한 셈이다.

드라마틱하게 시의원 배지를 단지 10개월 째.

그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기획행정위원회 소속인 그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의원들 간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얼마 전엔 5분 발언을 통해 "익산시가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에 따라 발 빠르게 유치전에 뛰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군산과 익산 중간 지점인 ‘오산이나 임피’ 근처에 2차 공공기관을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 그가 바쁜 의정활동 틈틈이 몰두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익산시 정체성 찾기.’

그는 요즘 익산시 근대문화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느라 엄청난 발품을 팔고 있다.

구도심 일대 폐가의 담을 넘은 적도 수차례나 된다. 건물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게 일상이다. 최근엔 중앙동에서 집을 철거하다가 옛 문서가 발견돼 전화를 받고 달려간 적도 있다.

“이젠 웬만한 사람들은 제가 근대문화역사 자료를 수집한다는 걸 다 압니다. 중앙동 우성약국 강태욱 박사는 직접 나서서 옛날 사진들을 수집하고 다닐 정도입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피곤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지만 힘이 불끈불끈 생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익산의 정체성 찾기에 여념이 없는 장경호 의원을 만나 그동안의 성과를 들어봤다.

-의정활동 10개월째다. 소회는.

먼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금방금방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행정 절차와 과정에 따라 행정이 집행돼야 하지만, 사안에 따라 ‘즉시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꼭 거쳐야 하는 절차나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 행정사항은 신속처리 됐으면 한다.

그리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10개월 의정활동을 하다 보니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공무원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그런데 20~30년간 공직에 있는 공무원들은 의원들을 오죽 잘 알아볼 것인가.

공무원들에게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의원”이란 말을 듣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익산시 정체성 찾는 일에 여념이 없다고 들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웃음)맞다.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다.

원래 도시재생 쪽에 관심이 많다. 시의회에 입성하기 전에 익산시 도시재생주민협의체 대표를 맡고 있었다.

도시 재생은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시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콘텐츠를 발굴해 낼 수 있을까 알아보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자료 수집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익산의 근대문화역사에 대한 문헌자료가 의외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건물이나 자원들은 많이 있었다.

자료는 없지만 자원은 많이 남아 있어 스스로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료를 근거로 찾아보다가, 새로운 자원을 찾아내기도 했다.

-찾아낸 새로운 근대문화역사 자원은 무엇이 있는가? 대표적인 것만 알려준다면.

우선 생각나는 대로 말씀 드리면 ▲중앙대 이리분교 교사 ▲나루토여관 ▲1950~1960년대 교사 학습지도 교재 ▲이리 비행장 존재와 위치 ▲이리 화교학교 역사 ▲농고방죽(시녀제) 전경 등 많다. 모두 다 익산의 소중한 근대문화역사 자원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루토여관은 철거된 걸로 알고 있다.

예, 아쉽게도 그렇게 됐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때문에 철거됐다.

일본식 건축물인 나루토여관은 1910년대 후반 1920년 초반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나루토여관 바로 앞이 이리극장이었다. 당시 극장에서 일본의 유명 기업가의 강연과 가부키‧동경소녀가극단 공연 등이 열렸다. 이들이 강연이나 공연을 마치고 나루토여관에 투숙했다.

우리나라 악극과 가극, 창극, 국극 등 공연단들도 묵어갔던 고급 여관이었다.

도시 재생과 문화관광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될 가치가 매우 높은데 철거돼 아쉽기 그지없다. 그나마 철거 전 실측자료와 사진으로 남아 있어 다행이다.

-중앙대학교 분교가 익산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중앙시장 안에 건물이 남아 있다. 옛 원광여상 건물과 이어져 지어졌다.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으로 중앙대 본교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호남권 학생들을 위해 당시 이리에 분교를 개설했다고 한다.

호남에서 가장 교통이 좋고 접근성이 쉬운 이리에 분교를 설치 한 것이다.

그때 당시 사진도 찾아냈다.

-이리 비행장은 또 무슨 말인가.

맞다. 1936년 익산에 비행장이 있었다. 1936년 신문에 고창 출신의 비행가 신용욱 씨가 경성 이리간 정기 비행노선을 청원해 인가가 났다는 내용이 실렸다.

또 인가가 나 다음 주부터 운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불교신문에도 1942년 소태산대종사가 경성에서 출발해 목천포비행장에서 내려 자동차로 보화당까지 갔다는 기사가 있다.

비행장으로 추정된 장소를 직접 수소문해 찾았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김제시 공덕면 저산리다. 예전에는 오산면이었다. 비행장 활주로는 지금은 논으로 변했다.

기사가 난 신문을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다.

-앞으로 자료 활용 방안은.

앞으로도 사진과 자료를 더 수집해 근대문화역사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개인적 욕심은 이리 근대문화역사를 중심으로 책을 쓸 요량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을 글로 남기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익산은 도시 잠재력이 큰 도시다. 고대에는 금마, 왕궁을 중심으로 백제 수도가 있었고, 근대에는 일제가 중심철도와 동양척식주식회사(중앙동 IBK 건물)의 지점을 둘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

이러한 고대와 근대역사문화 자원들을 잘 활용해 우리 익산이 문화관광 도시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익산이라는 도시가 과거에도 중요한 위치와 위상을 가졌듯이 미래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기억되도록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사진‧글 우창수 기자

※ 사진출처. 동국사 종걸스님. 중앙대학교. 김승대(전라북도학예연구관)

철거되기 전 나루토여관 전경.
시녀제(이리농고 방죽).
이리 비행장 관련 기사.
일제강점기 시절 이리경찰서.
중앙대 이리분교 1호교사.
중앙대 이리분교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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