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원광대 LINC+사업단 지역선도센터 담당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문의 수호신인 야누스는 얼굴들이 서로 뒤통수를 맞대고 붙어있는 모습이다.

영어에서 1월을 뜻하는 ‘재뉴어리(January)’는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은 현대에 와서 이중적인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이중적이라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마약은 하지 않았으나 체모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었으니 조사를 할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자와 후자가 서로 상충하는 이 역설적인 모습이 바로 이중적이다.

사람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 사람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를 대할 때 그 사람의 됨됨이와 ‘참인격’이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처할 일이 많은 직업은 다름 아닌 콜센터 상담사다. 정부기관이든 기업체이든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또한 콜센터 상담사이다.

대학 시절 콜센터에서 시간제로 일을 할 때였다. 10시 30분부터 주문 전화가 쏟아지기에 모든 상담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화장실도 물론 참다 참다 급히 뛰어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인지 콜센터가 자리한 건물 한 쪽은 늘 담배연기가 뿌옇게 안개처럼 깔려 있곤 했다. 약 200평~250평 남짓한 사무실 각 자리마다 걸려있는 수화기 너머에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존재했다.

매운 음식을 시켰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매우면 어떻게 먹냐며 환불을 요구하는 이부터 30분 내에 도착하지 않았다며 다짜고짜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이, 자기가 누군지 아냐며 당장 음식을 대령하라는 이, 심지어는 상담원에게 전화로 성추행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크지 않았기에 상담원들은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당시에 제법 많은 시급을 받았지만 필자는 약 1년 2개월을 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며 필자는 ‘나는 절대 저 사람들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수화기 안에서 성난 목소리로 내게 욕을 하던 이들은 이제 없다. 정부기관 콜센터에 전화하면 ‘지금 전화를 받는 상담사는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는 이렇게 변했는데 여전히 일그러진 성관념 혹은 나름의 유교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 떼잉! 그냥 영감탱이라고 지칭하겠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들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홍 모 선생님께서는 영감탱이가 친근한 경상도식 표현이라 했으니 가르쳐 주신대로 배움을 실천하고자 한다.

한 영감탱이 분이 있었다. 고명하신 분이 매우 엄중한 자리에 초청을 받아 대기실에 있었는데 대기실에 상주하던 직원에게 “귤은 일일이 까기에 번거로우니 당신이 까서 입에 넣어 달라”라고 말했다.

이분은 다음에 등장하는 이들에 비하면 비교적 양반이지만 독자분들께서는 요즘 시대에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아시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한 직장인이 계약서 내용 중 일부이다.

“‘을’은 방송 활동, 프로모션, 이벤트, 각종 인터뷰 등 ‘갑’이 제시하는 활동을 전적으로 수락하여야 하며, ‘갑’과 ‘을’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 ‘갑’의 해석이 우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세상에 어떤 갑을관계가 있어도 위와 같은 계약서는 있을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위 계약서를 작성할 수 밖에 없었던 연기자를 꿈꾼 ‘을’은 고인이 되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의 꿈을 이용해 술자리에 수없이 동석하게 하고 단순한 접대가 아닌 수치스러운 경험을 강요해 인간스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수치심 또한 강제한 이들은 대부분 혐의없음 혹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여전히 그들은 다른 인격을 포장해 숨긴 채로 스스로의 삶을 문제없이 살아간다. 계약서상의 지워진 ‘을’을 완벽히 잊고 본인들의 잘못을 망각한 채로 말이다.

사람의 이중성이란 참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이중성을 무기로 저지른 타인에 대한 죄를 묻어버리는 행위와 그 죄의 무게는 당신이 살았을 몇 겁의 생 동안 지은 죄보다 훨씬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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