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 걸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늦깎이에 배움의 길을 나선 용기 있는 할머니들이 있다. 동산사회복지관 성인문해교실 초급반. 백경자(74)·한상순(78)·장두복(83)·서기순(59)·김정이(80)·최영례(73)·이정숙(74)·김영자(74) 씨다.

이들은 그동안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살아왔다. 이름 석자도 겨우 쓸 줄 아는, 아니 겨울 그릴 줄 아는 문맹인이었다.

아들 가르치기도 빠듯하다며 딸은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던 불운한 시절에 태어난 것도 모자라 평생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가정을 위해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박수갈채를 보내도 부족한 자랑스러운 우리네 어머니이자 할머니들이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인 황혼에 들어서야 “한글이라도 깨치고 죽고 싶다”며 못 배운 한을 풀고 있는 이들은 한여름보다 더 뜨겁게 늦깎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한상순 씨는 목수였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여동생, 남동생을 대학까지 가르쳤다. 정작 자신은 한글도 깨치지 못하고 살다가 지난 3월 문해교실을 찾았다.

해방둥이(1945년 출생)인 백경자 씨는 학생들 중 가장 거리가 먼 석탄동 신복리에서 왔다. 다섯 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교 문턱도 들어서지 못했다.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고생고생 농사짓다가 늘그막에 연필을 잡았다. 한글을 배우는 게 재미있다며 싱글벙글이다.

같은 동네 살다가 동산동으로 이사 온 이정숙 씨는 백경자 씨의 둘도 없는 벗이다. 나이도 같은데다 한글도 같이 배우고, 노래교실이며 각종 취미교실도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같은 나이의 김영자 씨는 2017년까지 신동에서 원룸을 운영하다가 동산동으로 이사 왔다. 늦게나마 한글을 배우지만 동산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교실이 정말 좋다며 칭찬이 한 가득이다. 동산사회복지관은 노인들의 놀이터자 사랑방이란다.

학생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장두복 씨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부잣집 장녀였지만 공부를 멀리했다. 그때 공부 안 한 게 후회된다”며 “배움의 시기를 결코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가장 나이가 젊은 서기순 씨는 2016년부터 초급반이다.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아주 어릴 때부터 일만 하며 살아왔다. 배움이 더디지만 한자 한자 읽혀가는 게 재미있다.

김정이 씨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집밖에 잘 나서지 않았다. 지난 2월 동산동으로 이사 온 후 용기 내어 문해교실에 나왔다. 한글을 배우며 같은 반 학생들과 정을 쌓아가고 있다.

최영례 씨는 위암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병원가지 않는 날은 문해교실에 꼭 나올 만큼 열정적이다. 친정이 서울인데 지하철 노선을 알고 싶어 배움의 길에 나섰다고.

김영아 강사(51)는 “할머니들의 배움의 열정이 대단하시다. 가르치는 제가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칭찬했다.

김명희 사회복지사(29)는 “2006년 ‘한글교실’로 첫 출발한 동산사회복지관 성인문해교실은 현재 3개 반 총 36명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며 “만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전액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 수시로 교육생을 모집하니 언제나 문을 두드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급반은 화·목·금 오전 10~12시, 중급반은 화·목·금 오전 9~11시, 지역 연계반(부송동 작은도서관)은 월·수·금 오전 10~12시, 오후 1~3시 진행한다.

문의 ☎063-842-2253.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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