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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아름다운 이웃사랑 잊지 않겠습니다”열린신문이 만난사람- 12년 통장수당 전액 2천640만 원 기부한 김재섭 평화동 통장
우창수 기자 | 승인 2019.06.12 23:22

별명 ‘호롱불’ 가난한 집에 태어나 무일푼 자수성가한 한스빌마트 대표

수당 전액 헌납 주민에 헌신한 ‘일등통장님’… 도시가스 개통 일등공신

‘기부천사 김재섭 통장(59).’ 그는 평화동 14통, 좀 더 쉽게 법정구역으로 말하면 목천동 한스빌아파트 101동을 담당하고 있는 통장이다.

한스빌아파트 입구에 있는 한스빌마트를 운영하는 그가 기부천사로 불리게 된 것은 익산시가 매월 20만 원씩 지급하는 통장수당을 단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전액을 시민들을 위해 기부했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2019년 6월 말까지 그가 기부한 통장수당은 모두 합쳐 2천640만 원. 웬만한 승용차 한 대 값과 맞먹는 거액이다.

지난 3월에서야 빚 청산을 할 만큼 한 푼이 아쉬울 정도로 넉넉하지 않게 살아온 그가 통장수당을 기꺼이 내놓은 이유는 ‘주민과의 약속’ 때문. 자그마치 12년 전에 통장이 되면서 “수당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말한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오롯이 지켜온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으로는 그의 통장수당 기부행진을 볼 수 없다.

최근 ‘췌장암(4기)’이 발병한데다 간으로 전이되면서 다발성 간암까지 생겨 더 이상 통장 직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6월 말 통장 임기를 마감하고 투병생활에 들어가는 그는 지난 11일 오후 3시, 마지막 통장수당을 기부하러 익산시청을 찾았다.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정헌율 시장은 애써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병마와 싸워 꼭 이기고 돌아와 달라”고 격려를 보냈다. 사실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는 정 시장은 유럽 순방을 마치자마자 그를 찾아 위안을 하기도 했었다.

나은정 복지정책과장과 정경숙 효문화계장을 비롯한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통장님, 앞으로 20년은 얼굴 보고 살아야 하니 건강하셔야 합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시장실을 나서는 그를 환한 미소로 배웅하는 정 시장과 공무원들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갛게 붉어져 있었다.

의협심 강한 바른생활 소년 별명은 ‘호롱불’

그는 1961년 11월 7일 웅포면 송천리 40번지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 그의 집은 두메산골에 달랑 하나 있는 외딴집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학교 별명은 호롱불이었다. 지금도 동창회 카페 닉네임은 호롱불이다.

“어릴 땐 여자 아이들이 호롱불이라고 불러서 엄청 부끄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뜻있는 좋은 별명”이라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함라초와 함라중을 다닌 그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의협심이 대단한 바른생활 소년이었다. 학교나 집에서도 말썽 한 번 부린 적 없는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중학교 땐 부반장, 규율부장을 지냈다.

지금도 꼼꼼한 성격에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아 함라중 25회 동문회 총무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다.

18살 때 소년가장 돼 선친 빚 갚아

그의 가정형편은 그 당시 최하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농부였다. 호롱불 켜고 산 외딴집도 남의 집을 빌린 것이었고, 남의 논일을 하며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러던 1977년 12월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해 아버지 나이는 57세였고, 그는 겨우 18살 된 소년이었다. 그것도 중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아버지가 눈을 감는 바람에 그는 합격해놓은 이리공고로 입학도 못하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이 됐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갚아야 할 쌀 80가마의 빚더미였다. 그는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농사를 지었다. 빚을 내어 경운기 한 대를 사고, 논을 빌려 농사지어 열심히 빚을 갚았다. 그러길 4년. 아버지가 남겨준 빚은 한 톨도 남김없이 모두 그의 혼자 힘으로 청산했다.

그 다음해에는 남의집살이를 마감하고 어머니 명의로 된 시골집 한 채를 장만했다.

친구들 보다 1년 늦게 진학 학구열 불태워

이리공고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한 그는 친구들이 가방 메고 학교에 다니는 게 부러워 1년 뒤 고교에 진학했다. 부러운 것도 있지만 배우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다.

학교 다닐 시간이 없어 택한 고교는 전주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가고 나머지 시간은 라디오 방송을 듣고 독학한 그는 방통고 5회 졸업생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를 입학한 그는 군 입대로 휴학했다가 제대 후 직업 때문에 중퇴했다.

무일푼으로 자수성가 가족 위해 살아온 평범한 가장

그는 1985년 군 제대 후 서울에 살았다. 무일푼인 그는 친척집 등에 얹혀살며 직장을 다녔다. 눈칫밥 먹기 싫어 결혼을 결심한 그는 1988년 중매로 만난 노미연 씨(55)와 백년가약을 맺고 살림을 차렸다. 당시 전 재산 800만 원을 털어 600만 원으로 단칸방을 얻고, 200만 원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단칸방을 옮겨 다니는 힘겨운 삶에도 두 아들 김현우(31)·현규(26)가 자신과 같은 불우한 청소년기를 살지 않도록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11년은 직장생활, 5년은 개인택시, 2년은 분식집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IMF때인 1997년 집값이 떨어지면서 생애 첫 그의 집을 장만했다.

2000년부터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던 그는 19년간의 서울생활을 접고 2004년 고향 익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지금까지 여행 다녀온 것은 제주도로 신혼여행한 것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가족만 생각하고 살아온 이 시대 평범한 가장이었다.

통장 된 후 수당 전액 기부 주민에 헌신

2004년 서울서 내려와 조카가 하던 한스빌마트를 인수한 그는 2008년 통장에 선출된 후 통장수당 전액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집 사고 마트 인수하느라 은행대출을 받아 한 푼이 아쉬운 빠듯한 살림이었어도 그는 “나도 가난하지만,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많다”며 흔쾌히 이웃을 위해 통장수당을 내놓았다.

통장으로서의 그의 삶은 주민에 대한 헌신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은 행정에서 도움 받도록 해주고, 죽음 직전에 있는 병상에서 혼자 사는 주민을 살린 수호천사였다.

주민을 위한 일이면 물불가리지 않았다. 도의원, 시의원으로부터 5천600만 원을 지원받아 지반이 침하된 아파트 도로를 개선한 후 아스콘을 새로 깔고, 차선도색과 쓰레기장 개선 등 많은 일을 해냈다.

도시가스 11년 만에 개통 생애 가장 큰 보람

그는 2008년 통장이 된 후 도시가스 개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처음엔 혼자서 추진하다 2011년 주변 마을 통장들을 설득해 도시가스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2017년 마침내 익산시가 보조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도시가스 공급이 확정됐고, 2018년 6월 꿈에 그리던 개통이 이뤄졌다.

그는 목천동 도시가스 개통이 생애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을 믿었으나 실망만 거듭했다. 정헌율 시장 취임 후 합법적 지원 정책을 만들어 도시가스가 개통됐다. 시장님이 정말 고맙고, 나로서도 가장 보람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주민분담금을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그는 “시 보조금이 세대 당 41만 원씩 지원돼 당초 130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할 주민들이 8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것도 모두 시장님 덕분”이라고 공을 치켜세웠다.

도시가스 개통식이 치러진 2018년 6월 27일은 그에게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그는 이날 사재 160만 원을 털어 기념타월 300개를 주민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후회 없지만, 가족에게 항상 미안… 사랑한다”

강직한 성품에 불의와 절대 타협을 안 하는 그는 주민들의 신임이 매우 높다. “할 일만 묵묵히 바라보며 단 한 번도 어긋난 길을 간 적이 없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지나온 삶은 후회가 없다.

하지만 암투병중인 그는 아직 미혼인 두 아들과 부인을 남겨두고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날까봐 걱정이 앞선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일을 제쳐두고 가족을 위한 일을 하나씩 해나갈 생각이다.

그는 그동안 속으로 담아뒀던 가족에 대한 애정을 밖으로 쏟아냈다.

“가족 모두 화목하게 살길 바란다. 두 아들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어긋나지 않고 진실 되게 살길 바란다. 앞으로 치료가 잘돼 생명이 연장된다면 남은 생은 아내와 단 둘이 못 다한 여행을 하고 싶다. 현재까지 시어머니를 모시는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다. 그동안 못해준 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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