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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칼럼 - 아침이슬, '소년이 온다'이희수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9.10.21 08:18
원광대 LINC+사업단 지역선도센터 담당

“곧 계엄군이 올 거야, 형은 괜찮으니 어서 집에 들어가!”

고등학생인 이 군은 목구멍을 타고 피가 끓어 넘치는 것 같았지만 집에 가야 했다. 나도 형, 누나들과 함께 이 자리에 남겠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애원하듯 소리치는 형의 말이 이 군의 발을 집으로 돌리게 했다. 그리고 총소리와 군홧발로 짓밟는 소리가 도청 광장을 뒤덮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온통 범벅이 되었지만 이 군은 연거푸 마른 세수를 하며 끄윽끅 숨을 죽여 울었다. 시신안치소로 쓰이던 상무관에 참혹한 모습으로 누워있던 이들, 이제 장년이 되었지만 이 군은 여전히 모든 광경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재생된다.

계엄군에 구타당한 남편은 눈알이 빠졌다고 소리치며 바닥에 나뒹굴고,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원광대학교 한의대 본과 2학년 재학 중이던 그는 전남도청 앞에서 부당한 독재에 대하여 이웃들과 함께 항의했을 뿐인데, 계엄군의 총알은 결국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의 이름은 임균수다. 아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는 아들 몫의 보상금과 사재를 털어 장학회를 설립했다. 그의 바람은 아들의 이름이 기억되도록 장학회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5월이 오면 임균수의 아버지, 임병대 씨와 그 이웃들의 눈 앞에 그 파노라마가 다시 재생되고, 눈물 또한 끝없이 차오른다.

1988년 12월에 태어난 이수인 씨. 대학 시절 그는 학과 교수님을 도와 교수님의 칼럼집을 교정하는 일을 하던 중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광주 5.18 운동의 배후에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라는 요지의 칼럼에는 그 증거로 북한에 있다는 5.18에 투입된 북한군들의 묘비 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다. 아무런 글자도 써있지 않은 그 묘비는 아무리 봐도 5.18 운동과의 관련성이 부족해보였다.

생각과 다른 칼럼을 수없이 교정하며 이수인 씨는 당시 평화운동으로 유명했던 이재봉 교수의 교양수업을 필사적으로 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생각이 변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생 이 씨는 캠퍼스에 마련된 임균수 광장에서 왜 그 광장의 이름에 임균수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후에 그 자리에 법학전문대학원이 들어서며 창의공과대학 건물 앞으로 옮겨진 추모비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때의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다만,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전직 대통령의 별명인 “DDD”와 정치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노래를 늘 기억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디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개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1980년 5월,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이 군은 이제 장년이 되었다. 이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 옛 전남도청을 지나며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눈물과 피가 끓어오른다. 1988년생 이 씨는 그의 인도를 따라 전일빌딩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을 보았다. 헬기에서의 사격은 없었다는 주장에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공중에서만 탄알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그 자리에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듯이 총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금남로 도로 한쪽에서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외지인들이 대다수인 이 시위의 목적은 광주 5.18 운동의 배후에 북한군이 있었으며, 당시에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좌파 빨갱이였고, 좌파 대통령 때 민주화 유공자로서 시민들의 혈세에서 나온 보상금을 받은 이들의 공적사항이 위조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신사가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혼잣말을 하며 지나가다 시위대와 시비가 붙었다. 시위하던 이들은 종북 좌파, 빨갱이라며 그를 조롱했고, 헬조선보이라고 자처하며 영화 캐릭터 헬보이 가면을 쓴 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캡모자를 쓴 남자가 마이크로 한껏 그를 비웃었다. 경찰이 그들을 말리고 나서야 한 덩이의 싸움은 끝났고,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갔다. 1988년생 이 씨는 더 이상 그 시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금남로를 걷기 전 들렸던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1980년 5월에 배고픈 이들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나눈 주먹밥이 담겼던 양은광주리와 피묻은 신발, 원래는 아름다운 색이었을 피투성이의 블라우스, 그리고 기록관에 있던 모든 기록과 총탄이 뚫은 옛 광주은행의 유리창이 그를 오열하게 했다. 몰랐다는 죄책감이 그를 오열하게 했고, 기록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1980년 5월에 죄가 없는데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어야 했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검시기록이 그를 오열케 했다.

1988년생 이 씨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를 모아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이 나쁜 사람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무장권력조직들이 민간인 사회집단들을 적으로 다루거나, 무장권력조직들이 그 집단의 성원으로 간주한 개인들에 대해 살해와 포격, 강제력을 이용해 그 집단들이 실제 가지고 있거나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적 힘을 파괴하려는 행위를 제노사이드라고 한다.

그 예시는 참 많다. 4.3사건, 여순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해외의 사례로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에서 죽어나간 300만명의 인민들,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서 벌어진 인종청소(1991~1999), 프랑스인의 알제리인 학살(1945~1960), 르완다 내전(1994), 콩고내전(1998~2003)(18),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2003~2010), 일본군의 난징대학살(1937), 동티모르인 학살(1975~1999). 홍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또한 조만간 이 예시에 추가되기에 충분해보인다.

1980년 5월에 고등학생이었던 이 씨가 나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때에는 계속 광주 시내 여기저기에서 시위가 있었지,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광장에 하나둘 모였고 ‘아침이슬’을 불렀어요. 그리고 지나가던 이들도 그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면 사복 차림의 경찰이나 군인들이 그들을 구타하고 시위가 진압되면 다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부하던 이들은 계속 공부를 하고, 어딘가로 가던 이들은 그들의 목적지로 걸어갔어, 지금도 그때의 모든 일들이 어제처럼 생생해요.”

1980년 5월 그 이후 당시 익산의 대학생들 또한 민주화를 위한 행렬을 이어나갔다. 원광대학교 정문으로 나와 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부당한 것에 항의하는 것, 당연한 일인데 그때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이에게, 그리고 회사 과장인 누군가에게, 기자 모 씨에게,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들의 친구에게도 젊은 날의 부당한 것에 대하여 항의하고 저항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정답은 1980년 5월 보안사령관 겸 중정부장 서리이자 시민에게 발포를 명령한 DDD와 그의 친구에게 있을 것이다.

※ 필자 주1. DDD는 ‘두환이 대가리 돌대가리’가 아니라 대단한 대통령 두환 장군의 줄임말입니다. 참고로 두환이 대가리 돌대가리라는 대목은 필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갑자기 뒤에서 끼어들어 키보드를 누른 겁니다. ‘DDD와 그 친구는 꼭 나날이 갖은 사고와 함께 유병장수하길 바람.’ 아이고, 레오야, ‘DDD 꼭 나날이 갖은 사고와 함께 유병장수하길 바람.’이라고 쓰면 안돼.     

※ 필자 주2.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꼭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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