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중학교 교장

철인 대회용 자전거를 타려면 전용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 바닥에는 신발과 페달을 연결해주는 클릿이 달려있다. 클릿은 오르막에서 힘을 쓸 수 있도록 신발 바닥에 붙인 이음 장치를 말한다. 자전거 전용 신발 바닥은 강철 소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평지를 걸을 때 뒤꿈치 충격을 줄여주는 쿠션 장치를 붙여 놓았다.

얼마 전 자전거를 끌고 나서는데 오른쪽 뒤꿈치가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쿠션 한쪽이 떨어져 나가 못이 밀려들어 왔다. 주말에 무주에서 열리는 자전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회 코스가 만만치 않다. 열심히 훈련했지만, 급경사 오르막을 만나면 걷지 않을 수 있을까. 힘에 부치면 걸어야 한다. 그때 튀어나온 못이 뒤꿈치를 찌르면 큰일이다. 마음이 급했다. 자전거 대리점을 하는 형님께 보여드렸다. 시간이 촉박해서 부품 조달이 안 되니 차라리 구두 수선하는 데 가보면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침 학교에서 멀지 않은 구두수선소가 생각났다. 신발은 본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낭패였다. 구두 뒤축 갈 듯 고무를 붙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거들었다. 이 양반이 어찌 된 일인지 좌불안석이다. 알고 보니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일단 화장실 다녀와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사람이 막힌 것을 비우지 못하면 생각도 막히는 모양이다. 두어 시간 지나고 가보니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남이 가지지 못한 재주를 지닌 그분은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못이 제자리에 박혀 있으면 흔적 없이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삐쭉 나오면 대가리를 맞고 납작 고개를 수그려야 한다. 바닥에 붙은 클릿은 자전거와 신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해준다. 그래서 고갯길에서 힘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쿠션이 없는 신발을 신고 바닥을 디디면 지면과 신발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갈등한다. 그 갈등을 최소화하며 부드럽게 적응하도록 쿠션을 덧대어 놓았다. 이렇듯 자전거 신발 한 켤레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난 돌처럼, 삐져나온 못대가리처럼 정 맞지 않으려면 나서야 할 자리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주위 사람을 한데로 모으고 서로 단단하게 결합하도록 꾸준히 베풀어야 한다. 그 기운이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도움으로 다가가야 한다. 마찰을 줄여 서로 삐걱거리지 않고 잘 적응하도록 윤활유 역할도 필요하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의견만 주장하며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있다. 친구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학생이 있다. 그런 삶은 외롭고 힘들다. 지치고 힘겨워하는 사람을 위해 내 마음을 열고 잠시라도 쉼터가 되어준 적이 있는가. 그들이 편히 다가올 수 있도록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했는지 돌아보았다.

원격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대면 수업을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매일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한다. 일찌감치 출근한 선생님들이 교통지도와 발열 체크를 하며 하루를 연다. 점심시간이 되면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대에 서는 선생님도 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과 복도를 돌며 마스크 착용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제대로 쉴 틈도 없다. 모든 선생님이 톱니바퀴처럼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해주니 학교는 훈풍이 돈다.

이제 깔끔하게 손질된 신발을 신고 안전하게 대회를 완주하는 일만 남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온통 감사한 사람,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 이래저래 세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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