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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도시 익산의 산증인 '최재덕 주얼리백화점 대표'영등동에 전국 최대 규모 매장 오픈 '제2도약 꿈꿔'
송태영 기자 | 승인 2020.07.27 09:39

제품 80% 이상 직접 디자인 생산 저렴하게 판매

40년 한우물…부도 2번 이겨내고 오뚜기처럼 제기

내일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만큼 강력한 영양제는 없다고 한다. 내일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내일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오늘을 성실과 기쁨으로 살기 때문이다.

최재덕 주얼리백화점 대표(59)가 그런 사람이다.

‘긍정·성실·희망’을 가슴을 안고 산다.

그래서일까. 온갖 고난을 황소와 같은 힘으로 묵묵히 헤쳐나왔다.

삶의 무게에 비례해 최 대표 별명은 하나 둘 늘어 났다.

‘익산보석산업의 흥망성쇠 산증인’, ‘한우물’, ‘오뚜기’.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최 대표는 보석인이다.

지난 7월 초 귀금속1단지 보석거리에 주얼리백화점(선화로 63길 3-2)을 개업했다.

1층 300여㎡(90여평)의 매장에는 진주, 루비, 에머럴드, 천연석 등 2천여 점의 각종 보석이 고객을 맞이한다. 가격은 5만 원부터 1천600만 원까지.

특히, 이곳에는 귀걸이·반지·팔지·목걸이 패션디자인 제품이 많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매장을 자랑하는 주얼리백화점은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커피숍 컨셥으로 구성했다.

손님들은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보석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에서는 각종 귀금속을 가공하는 시설이 들어서 있다.

최 대표는 “직접 생산·판매하는 제품이 80% 이상”이라며 “엄청싸게 판매하는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싸게 판매하는 줄 모른다”고 설명한다.

최 대표가 주얼리백화점을 개업하기까지는 가시밭과 같은 고난을 넘어야 했다.

지나온 일을 이야기하려면 밤을 지새도 모자란다고.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이 일 저 일을 하다 20살이던 80년 먹고 살기 위해 보석산업에 첫 발을 디딘다. 당시 월급은 3만 원.

40년 한우물을 팠다.

최 대표를 익산보석산업으리 산증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최 대표는 처음엔 보석가공을 하다 세공으로 전환한다.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인데 보석세공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보석세공이 천직인 것같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최 대표는 보석세공업계에서 금세 기술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최 대표는 직원 몇 명과 하청을 맡아 보석 세공을 시작했다.

일감이 밀려왔다. 승승장구였다.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행복의 계단은 미끄러지기 쉽다’는 격언을 실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3년 믿었던 업체로부터 부도를 맞았다. 2억5천만 원이었다. 당시 대기업 초임 월급이 50만~60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이 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지만, 아내와 두 아들을 생각하며 고난을 감내했다.

8년 만에 빚을 갚는 데 성공한다.

사업은 순조롭고, 일상은 평온을 찾아 가는 듯했다.

하지만, 신은 또다시 최 대표를 실험한다.

2009년 이번엔 6억 원을 부도 맞는다.

“두 번째 부도를 맞았을 땐 담담했죠.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 오뚜기처럼 일어났습니다.”

1년에 추석과 설날 딱 이틀만 쉬면서 악착같이 뛰었다.

반지하 열악한 환경에서 샘플을 만들어 전국 금은 도매상을 찾아다니며 주문을 받아 밤 낮으로 일을 했다.

2015년 6년 만에 빚을 청산한다.

두 번째 부도가 났을 때 펑펑 울음을 쏟아내는 아내를 달래며 아파트를 사주기로 한 약속도 마침내 지켰다.

돌이켜보면, 최 대표 인생에서 2015년은 결정적인 해였다.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영등동 귀금속1단지에 있는 230㎡(70평) 짜리 건물을 매입한다.

이 곳에 공장을 차렸다.

이 무렵 군대를 제대한 두 아들(명흠·종흠)도 아빠의 사업에 합류한다.

2017년 전주 송천동에 금은주얼리를 개업, 종흠 씨에게 맡겼다.

다음 해인 2018년에는 공장을 매각, 현 건물을 구입해 개업을 준비한다.

최 대표는 지금도 직접 보석세공을 한다.

최 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이제 현장에서 손을 뗄때가 된 것 아니냐고 권유한다. 하지만 앞으로 2~3년은 더 일할 생각이다.

최 대표는 익산 보석산업은 지금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익산 보석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진단한다.

먼저, 낡은 오폐수 시설을 개선하고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외지인들을 끌어 들여야 한다고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광투어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이 아니다. 장인의 혼이 들어가야 진정한 보석이다.’

최 대표가 늘 마음에 새기는 글귀다.

상담문의 ☎063)836-0300, 010-8525-9073.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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