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고철에 생명 넣는 '이형열 도예가'

작업장 마당에 정크아트 전시… 왕궁리유적지 인근 대형 말 선봬 볼거리 제공

덕기동 어느 밭에 말 두 필과 이를 지키는 이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은 말은 아쉽게도 움직이지 못한다. 자동차범퍼와 각종 고철로 만들어진 정크아트(일상생활에서 나온 부산물인 폐품을 소재로 제작한 미술작품)다.

세계문화유산 왕궁리유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말의 주인은 흙을 만지는 이형열 도예가(66)다.

덕기동 신덕마을에 위치한 그의 작업공간은 두 곳으로 나뉜다.

흙내가 가득한 도예 공간 진토요와 고철이 다시 태어나 전시장을 이룬 와룡원이다.

긴 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은 모습이 꽤 잘 어울리는 그는 33년 간 교직에 헌신한 교사였다.

이리고, 전주교대를 졸업하고 경기도와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그가 퇴직 후 작가로 변신해 고향에 정착한 것이다.

그에게 도예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2000년대 초 부산에는 다도 문화가 활성화 됐다. 당시 지인이 말차(분말형태의 차)를 전통미 가득한 찻사발에 내어 준 것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찻사발은 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다. 찻사발을 보는 순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찻사발의 품격은 어느 것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라며 찻사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주말과 방학이 되면 그는 도자기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50세에 시작한 도예는 쉽지 않았다.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을뿐더러 전통 방식은 직접 연구하고 터득해야 했기 때문.

그는 끈질긴 집념과 열정으로 무작정 도자기공장에서 일을 도우며 배워갔다. 그러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김종훈 작가를 만나 풀리지 않던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나갔다.

10년 전부터 고향 마을에 도예공방을 준비해 온 그는 전통 가마를 만들고 59세에 퇴직해 찻사발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통 방식을 재현하기 위해 옛날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흙과 유약, 불까지 조절하며 구워내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찾아냈다. 전통 찻사발.

그는 2018년 11월 개인전 ‘도자기와 정크아트의 만남’을 선보이며 작가로서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또 올해 제16회 문경찻사발축제에서 ‘정호다완’작품으로 입선을 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찻사발과 더불어 그가 푹 빠져 있는 것이 정크아트다. 작업실 마당에 마련한 와룡원에는 용, 장승, 음악가족, 부엉이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휑한 마당을 버려진 고철로 채우고자 시작한 정크아트는 어느새 그의 일과가 됐다.

왕궁에 거주하는 금속공예작가 김행령 교수가 그의 스승이다.

그는 논을 밭으로 성토하면서 기념적인 작품을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말 두 필과 말을 지키는 반인반수의 작품이다.

그는 “왕궁리유적을 가까이 두고 있어 말을 선택했다. 임금님이 말을 타고 다녔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흉물스럽지 않다면 관광객들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들고 싶었다”면서 “폐차장과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재료를 모아 2019년 3월에 한 마리를 세웠다. 그런데 조금 외로워 보여 올해 3월에 좀 더 생기 있는 말을 한 마리 더 세웠다”고 설명했다.

‘말이나 세워볼까’라는 그의 말이 왕궁에 말을 달리게 한 셈이다.

그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