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장포럼 대표 / 전 익산경찰서장

유년 시절,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잘 성장했지만 늘 가슴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부분, 부모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고자 아이들에게는 어떻게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으나 때로는 나의 미숙함이 아이들에게 독이 되기도 하고, 나에게도 부메랑처럼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이는 부모의 실수, 둘째 아이는 부모의 반성으로 키웠습니다.

상처와 미숙함을 고스란히 다 받아낸 아이가 첫째 딸입니다. 첫째의 요구에는 무엇이든 “안 돼!”가 앞섰습니다. 그 부분은 언제라도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할 대목입니다.

“아빠가 미안하구나. 사랑스러운 너의 아빠가 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었구나. 부디 사랑으로 감싸주면 고맙겠구나~”라고. 어느 날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사춘기였던 시절에 또래에 유행하는 모든 것들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모든 일에 자기주관이 뚜렷한 큰아이는 더욱 그랬습니다.

귀를 뚫겠다. 화장을 하겠다. 파마를 하겠다.

그런 요구를 하는 큰딸에게 제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안 돼!”였습니다. 그러나 큰 아이는 하지 말라고 안 할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귀도 몰래 뚫어 가리고 다녔고, 화장도 밖에서 하고 집에 오기 전에 지우곤 했습니다. 어쨌든 부모 눈에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아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빠른 깨달음 덕분에 둘째 딸은 언니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언니에게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던 것을 둘째에게는 “귀 뚫을래? 어디 아무데서나 뚫지 말고 안전한 곳에서 뚫자.”라며 손을 잡고 쥬얼리 가게로 가고.

“화장을 하는구나?” 하며 어울릴만한 화장품도 사주며, 피부가 상하니 너무 저렴한 화장품 쓰지 말고 기왕이면 건강한 걸 쓰라며 지갑을 열곤 했습니다.

첫째 녀석을 통해 겪은 시행착오의 수혜는 고스란히 둘째가 다 받게 되어서 그런지 작은딸의 사춘기 시절은 큰딸과 달리 평탄했습니다. 둘째 딸은 어릴 적 유난히 사촌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더니 결국 교대를 졸업하고 천생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훌쩍 자라서 성인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쉬움도 참 많이 남습니다. 아이들을 너무 강하게 키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입버릇처럼 “아빠는 대학부터 자신의 힘으로 다녔기 때문에 너희들도 스스로 다녀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한 것은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잘한 일이 생각납니다. 첫째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힙합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대 차이로 딸과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힙합에 대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소 거친 노래로만 치부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어른이 되기보다는 젊은이의 문화를 이해하며 딸아이의 취미활동을 존중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처음에 몰랐는데 힙합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왜 힙합 가사는 그렇게 자유롭고 즉흥적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때로는 거친 표현도 하고 말이다.”

그 날부터 딸아이와 저는 좀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녀들과 마주하는 처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의 아빠 역할은 여전히 처음이고 서툽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더 노력해야 할 사람은 반드시 부모여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나고 있고 당연히 철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탓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먼저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잘 잡고 이끌어주어야만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꽃처럼 예쁜 두 딸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지나온 아이들의 어린 시절 아빠의 부족함에 미안함이 생기자 애틋함이 더합니다. 녀석들이 시간이 흘러 결혼하게 되는 날, 사위에게 이 아이들의 손을 건네 줄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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