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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생가 지붕은 내려앉고 잡초 무성 탐방객들 '눈살'/현장취재 – 전라북도 기념물 6호 가람 이병기 생가 가보니
송태영 기자 | 승인 2021.10.14 09:08

처마·마루에는 거미줄… 주차장 한쪽은 농기계가 차지

생가 앞 국도1호선 방음벽 투명 아크릴로 교체 제안도

현대시조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람 이병기.

지난 10일 찾은 가람 생가는 새소리와 풀벌레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초가집은 전형전인 1960~70년대 농촌마을을 보는 듯 아늑했다.

사랑채 앞에 자리한 연못에는 연꽃모양의 수생식물이 하얀 꽃봉우리를 터트려 반겼다. 탱자나무에는 노란빛깔의 탱자가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여산의 명산 천호산이 발아래에 있는 듯 한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이 넓어 주차도 편리했다.

하지만 가람 생가에 들어선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곳곳에 잡초가 무성했다. 뒤뜰에 자리한 장독대도 잡초가 뒤덮여 있었다.

안채 지붕을 이은 볏짚은 창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듯 아슬아슬했다. 부엌문은 활짝 열려 바람에 흔들렸다.

사랑채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붕은 볏짚이 삭아 여기저기 움푹 패여 있고, 처마 아래에는 지붕에서 떨어진 새까만 오물이 덮여 있었다.

관람안내문이 자리한 사랑채 처마는 거미줄이 차지했다. 거미줄은 안채 마루에도 마찬가지다. 주차장 구석에는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는 퇴비살포기가 버티고 있었다.

가람 생가를 찾은 방문객 A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선생의 생가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며 “이에 반해 가람문학관은 선생의 일생과 작품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내실 있게 갖춰져 있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여산면이 고향인 B씨는 “가람 선생은 우리의 글을 지키기 위해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고난의 삶을 살았다”며 “가람 생가와 문학관은 익산의 자랑스러운 문화관광자원”이라고 평가했다.

B씨는 “가람문학상 수상자를 매년 선정해 시상하고 있지만 가람 생가와 문학관을 외지인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익산시와 지역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에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씨는 또 “논산~삼례·전주를 잇는 국도1호선이 가람생가 앞으로 지나고 있다”며 “하지만 방음벽에 가려 운전자들이 가람생가를 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B씨는 “방음벽을 투명한 아크릴 재질로 교체하면 국도1호선을 운행하는 운전자들에게 가람생가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익산시와 지역사회의 무관심속에 가람 생가와 문학관을 찾는 방문객 수는 가뭄에 콩 나 듯하다.

10일 가람문학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기자를 포함해 모두 17명.

가람문학관 관리인은 “코로나19 여파로 단체관광객의 방문이 끊겼다”며 “가족단위 개별 탐방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고 밝혔다.

가람 생가는 1973년 전라북도 기념물 6호로 지정됐다. 생가 옆에는 가람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람 문학관에는 선생이 58년 동안 기록한 일기, 부친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선생이 작사한 교가를 들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 돼 있다.

선생은 여산초등학교, 이리동중학교,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31개교의 교가를 작사했다.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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