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두

                                    유 은 희

유은희 시인

쓰레기장 구석에 가죽 구두 한 켤레

놓여 있다 누군가 내다 버린

체중계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턱에 걸린 숨을 그만 내려놓은 듯

혀를 내밀어 보이고 있다

쓰레기장 어둠이 퇴적된 것은

구두가 모든 길을 해감하기 때문이다

채 벗어내지 못한 무게는 320그램,

벼랑 끝 발길을 돌려 와서는

뼛속까지 박아 넣었을 못의 무게다

소리 새어 나가지 못하게 못 끝 다져 문

속울음의 무게다

구두가 상처를 비벼 뜨는 순간

고장 난 센서 등이 오래된 기억을 깜박, 켠다

언덕길만 걸어왔던 아버지

모서리마다 덧댄 삶을 벗고

빈 잇몸으로 생을 빠져나가던 날을 기억한다

등을 서까래처럼 세워두고

몸만 빠져나간 사막 소의 주검처럼

여전히 제 코뚜레를 풀지 못한 구두의 발등이

한없이 부어 보인다

<작가노트>

쓰레기장에서 누군가 내다 버린 구두를 보았다. 멀고 굴곡진 길을 평생 걸어왔을 구두는 덧대고 덧댄 흔적을 다물고 비스듬히 닳아 있었다. 버려진 구두를 들여다보다 그만 아버지의 삶이 복받쳐 올랐다. 가난한 아버지가 감당해야 했을 생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한밤중에 마루 끝에 나앉아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버지의 가파른 등을 본 적이 있다. 식구들 모르게 속으로 우는 듯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삶의 못 끝을 감당하고 견뎌내야 했을까? 생을 빠져나간 아버지의 부은 발등을 버려진 구두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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