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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의 문학산책-길 하나 등지고 오는유은희 시인의 문학산책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2.01.17 08:50

길 하나 등지고 오는

M마트 뒷골목에 한 노파

거친 잇자국으로 버려진 사과 같네

누더기 보따리를 갓난아기 어르듯 품었네

우유와 빵을 건네자

보따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외짝 슬리퍼에 끌려가네

위태로운 뒤축으로 한 생이 벗겨지겠네

뭐든 품어 안으면 젖이 도는 여자에게

보따리는 여전히 따뜻한 기억일까

무의식의 젖가슴을 풀어 물리던

그녀는 배고픔조차 잊은 듯하네

저 누더기 속에 품었을 누군가는

어쩌지 못한 부끄러운 나이기도 하네

두 팔 가득 양식이 죄만 같아

자꾸만 뒤돌아보는 길

노을의 눈시울이 유난히 붉네

 

<작가노트>

어느 오후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잿빛 보따리를 품어 안은 한 노파가 뒷문 밖에 앉아 있었다. 야윈 모습에 짝이 맞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우유와 빵을 건네자 마치 품에 안은 보따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처럼 도망치듯 길을 건너갔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걸음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행여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겠다 싶어서 먹을 것들을 놓아두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 우리 중 누군가는 그 품에서 자랐을 게 분명하다. 나의 양팔 가득 일용할 양식이 그날처럼 부끄럽고 불편한 날이 없었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져 묻기 이전에, 인간소외의 사회구조를 탓하기 이전에, 뒷골목을 살피지 못하는 탁상공론의 행정을 비판하기 이전에, 안쓰럽고 안타까운 삶에 대해 나는 값싼 동정심을 얼마간 지불하고 스스로 그 불편한 마음에서 놓여나고 싶은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내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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