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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의 문학산책 - 숫돌유은희 시인의 문학산책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2.01.24 08:43

숫 돌

유은희 시인

무딘 것들 아래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날을 벼렸던 게 아니라

살점 베어내는 날을 견뎌냈을 것이다

저미고 스민 것들 뼛속까지 품어내다

잘록한 숫돌이 되어 올라가신 아버지,

벼리고 벼렸어도 여전히 나는

풀숲 한 길 헤쳐 가지 못하는

무딘 날인 것이다

 

<작가노트>

아침이면 마당가 화덕 옆에서 무딘 낫이나 칼을 숫돌에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매일같이 보며 자랐다. 날을 세운 낫으로 한 발 앞서 가며 풀숲을 헤쳐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빈집 마당가에 덩그러니 남은 숫돌을 보았다. 그것은 닳고 닳아 잘록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처럼 어깨뼈만 앙상해져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식들을 위해 맨 몸으로 견디고 버텨냈을 한 생애를 보는 듯 했다.

시 「숫돌」은 잘 벼려진 날을 주목하기보다 그 날에 갈려지는 숫돌에 주목했다. 

"무딘 것들" 뿐인 삶에서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납작 엎드려" "살점 베어내는 날을 견뎌 냈" 던 것이다.

"저미고 스민 것들 뼛속까지 품어내다/잘록한 숫돌이 되어 올라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무디기만 한 자식으로서 형언할 수 없는 뼈아픔을 느꼈다.

"벼리고 벼렸어도 여전히 나는/풀숲 한 길 헤쳐 가지 못하는/무딘 날인 것"을 비로소 깨닫고 움푹 파인 숫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는 숫돌 같은 삶을 사셨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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