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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절터 존재 가능… 발굴조사 필요”고려시대 어골문 기와 첫 발굴한 전창기 씨 일문일답
송태영 기자 | 승인 2022.02.17 10:13

지난 14일 오후 고려시대 어골문 기와와 해무리굽 청자를 처음 발굴한 전창기 전 부여문화연구소 연구원과 박기순·영철 부자의 묘지가 있었던 마동공원 공사현장을 다시 찾았다.

박기순·영철 부자의 묘지 옆으로 깎아 만든 길을 이용해 덤프트럭들이 공사현장에서 토사를 운반했다. 묘지를 지켰던 비석은 곳곳이 긁힌 채 기단석 등과 함께 땅속에 처박혀 있었다.

전 씨는 “익산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박기순·영철 부자의 비석은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자료”라며 익산시의 무관심에 혀를 찼다.

다음은 전 씨와 일문일답이다.

- 고려유물은 언제, 어떻게 발굴했나.

지난 2020년 산책을 하면서 발견했다. 비가 온 뒤 산책로에 모습을 드러낸 기와 조각을 확인했더니 고려시대 어골문 기와였다. 그동안 익산 시내권에서는 고려시대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깜짝 놀랐다. 이후 해무리굽 청자 조각도 찾을 수 있었다.

- 고려시대 어골문 기와인 것을 어떻게 알았나.

부여문화연구소에서 30여 년 동안 미륵사지, 왕궁리, 제석사지 등 유물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한눈에 고려시대 어골문 기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 어골문 기와와 해무리굽 청자는 언제, 어디에 사용했나.

고려시대 말 왕궁과 사찰에서 사용했다. 지금까지 출토된 다량의 어골문 기와조각을 보면 박기순·영철 부자의 묘지 인근에 고려시대 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발굴조사를 실시해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을 수습해야 한다.

- 박기순·영철 부자의 이장한 뒤 묘지 내부를 확인했나.

그렇다. 묘지 벽면 여기저기에 기와 조각이 박혀있었다. 묘지 옆 시굴조사 벽면에도 1m 깊이까지 기와 조각이 보이지 않나. 인근 어디엔가 고려사찰이 있었다고 유물이 말하는 듯하다.

- 익산시청 홈페이지에 ‘고려유물 출토’ 글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

유물수습과 보호를 위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마음에 글을 썼다. 답변을 보니 익산시 공무원들이 문화유적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데도 유적이 없다고만 주장한다. 현재 눈에 보이는 유물만 봐도 유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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