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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더불어 사는 삶 행복하고 보람”망성면 소흥영·김영례 부부 43년만에 귀향 ‘주민들 손·발’
송태영 기자 | 승인 2022.05.25 10:46

“올해 70인데 마을에서 젊은층에 속해요.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저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하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더 없이 행복하고 보람됩니다.”

망성면 어량마을 소흥영 씨는 주민들 사이에 ‘해결사’로 통한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아무리 어려운 부탁도 척척 해결한다.

고령의 마을주민들은 이런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때론 마을주민들의 ‘발’이 되기도 한다. 급히 병원이나 면사무소에 가야야 할 경우 승용차가 있는 그에게 부탁을 한다.

그는 또 ‘익산 어량정보화마을’ 관리자를 맡아 11년째 주민들이 생산한 청우리장아찌, 쌀(오색미·흑미), 잡곡, 밤, 고사리, 장록나물 등 농특산물을 전자상거래를 통해 판매한다. 지갑이 두둑해진 주민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농산물체험장을 운영해 마을 홍보에도 앞장이다. 최근엔 전국 자급자족원정대를 대상으로 모내기와 모종심기 체험을 진행했다.

농산물체험으로 인연을 맺은 참가자들은 청정 망성면에서 생산된 농산물 구매에 적극적이다. 어린학생들은 미래의 소비자다.

그는 또 망성면 주민자치위원, 익산시 체험지도사, 대한민국 청춘마술연합회, 열러라 에바다 예술단원으로 봉사와 나눔 활동에 참가한다.

김장, 고구마수확,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봉사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의 봉사에는 동갑인 부인 김영례 씨가 동행한다. 부부를 아는 사람들은 “늘 함께 다니면 지겹지 않나”는 부러움의 질문을 하기도 한다.

소 씨는 마술, 난타, 기타, 장구, 노래(트로트) 실력이 수준급이다. 요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 모두 봉사활동을 위해 귀향 후 배웠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출향한 소 씨는 갖은 고생 끝에 의류제작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서울생활을 했다. 그를 고향으로 부른 것은 부모님의 병환이었다.

“부모님이 뇌졸중으로 함께 쓰러졌어요. 더구나 동생이 장애 1급으로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어요. 고향을 떠난 지 43년 만인 지난 2011년 병간호를 위해 돌아왔죠.”

부모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온 그는 다음해 어량정보화마을 관리자를 맡았다. 마침 어량정보화마을이 그의 집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 편리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농산물 주문을 접수하고, 문자를 보내고, 서류작업을 마무리했다.

그의 극진한 간호에도 두 부모는 3년 만에 세상을 등졌다. 고향의 아늑함을 맛본 그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내 김 씨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한 것.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부부는 “왜 이렇게 늦게 고향에 내려왔나 후회되기도 하지만, 고향에 온 것은 부모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불러주고, 찾아주는 마을 주민들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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