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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칼럼 - 닳지 않는 추억송태규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2.06.13 08:55

닳지 않는 추억

심지창의융합교육원 대표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세대에게 학교 단축마라톤 대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까까머리에 흙먼지 뿌옇게 피어오르는 비포장도로를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던 추억 말이다. 그 시절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아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생들도 몸집은 작았지만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해서 지금 학생들보다 기초 체력은 더 튼튼했을 것이다.

그때는 마라톤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그랬는지 흔히 물에 적신 손수건을 입에 물고 달리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신발이나 복장도 달리기에 영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참 즐거운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친구들과 뛰다 걷기를 반복하며 운동장에 들어설 때면 힘은 들었지만 커다란 숙제 하나를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오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시내에 자리 잡은 학교 대부분은 혼잡한 교통 때문에, 또는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사고를 생각하여 이런 행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학창 시절에 달렸던 마라톤 대회는 그야말로 희미한 기억의 앨범 속에 묻혀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달리 당시 로마인들이 신체 단련에만 치중하는 세태를 못 마땅히 여긴 풍자시인 유베날리스가 정신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일갈했다. 주변에 건강을 잃고 정신까지 피폐해져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운동을 통해 건강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생활에 더욱 열정적으로 매진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신체 건강의 중요성을 확인할 기회는 생각보다 참 많다. 특히나 수험생들에게 체력은 매우 중요한 변수 중 하나이다. 기나긴 수험 생활에서 건강한 체력을 가진 학생이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는 시 외곽에 있다. 그런 특성을 장점으로 살려 해마다 단축마라톤을 했다. 학년 초 교육계획서에 날짜를 정한다. 체육과 선생님들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학생과 줄지어 운동장을 서너 바퀴씩 달린다. 이렇게 기초 체력을 다져 놓으면 평소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행사 시기에는 여기저기 옮겨붙은 꽃불이 들판을 붉게 태운다. 학생들은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린다. 그사이 답답한 교실 안에서 학습에 지친 심신을 가뿐하게 회복한다. 이런 일은 학생들의 체력 증진과 밝은 인성 함양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날 함께 달릴 수 있는 선생님은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며 직접 뛰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감독 장소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교통을 통제하면서 행사에 참여했다. 이처럼 교내 단축마라톤 대회는 선생님과 제자들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크다. 교문을 나서 툭 터진 들판을 지나고 연초록 향연이 펼쳐지는 미륵산 탑천길을 따라 약 5km를 달리는 코스는 아주 이상적이었다. 나도 학생들 틈에 섞여 부지런히 달렸다.

염소수염처럼 듬성듬성 꽂힌 모가 들판을 채워가던 무렵이었다. 이팝나무가 흰 웃음을 뿌리는 사이 애기 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리면서 검푸르게 변한다. 그런 들판을 달리던 학생들도 하루가 다르게 부쩍 성장했다. 해마다 모내기하는 철이 오면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닳아지지 않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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