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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식 에세이 - 빗소리로 그대를 짭니다서호식의 詩時한 이야기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2.09.19 08:57

빗소리로 그대를 짭니다

별빛정원 대표
시암문화원 원장

실타래처럼 비가 내립니다

실한 몇 가닥 추려 내

보고픔을 짭니다

 

굵고 곧은 가락 엮어

그대 있을 저만치로 띄웁니다

더는 젖지 마세요

 

빗소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대를 듣습니다

 

까마득히 많은 계절을 젖어 바라 본 비

그때마다 어떻게 다른 소리가 되어 오는지

다름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있다면 배워두고 싶습니다

 

내 입술로 뿌려진 말들도 이 비만큼 될까

땅속으로 스며든 빗방울 보다

바다로 간 빗물이 더 많듯이

버려지는 말 보다

씨앗이 되는 말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빗소리로 곡조가 된 글들이 그대에게도 내려

날줄 사이사이

그리움의 씨줄을 꿰어

그대와 나 한 올로

흠뻑 짜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는 양잠을 했다.

양잠은 단 간에 큰 돈을 만들어주는 가난한 살림에 아주 유용한 일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했고 온 식구들은 비 내리는 것은 아랑곳 않고 밭에 나가 뽕잎을 땄다.

비에 젖은 뽕잎을 그대로 누에에게 먹이면 탈이 났다.

누에 한 마리는 밥 한사발이 될 만큼 그 자체가 돈이어서 소홀하거나 함부로 하면 벼락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뽕잎 한 장 한 장을 마른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 누에를 먹이셨다.

한 달 살이 자식이었다.

그렇게 한 달 쯤 자란 누에는 잘 키워 준 고마운 보답으로 돈을 만들어 주었고, 살림이 되었고, 밥이 되고, 학비가 되어주었다.

가난한 유년시절 한번 쯤은 실크로드를 걷게 해준 양잠은 고된 노동이었지만 풍요가 되어 주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누에는 씨줄에 날줄을 꿰어 비단을 짜고 어머니는 가난한 자식들 장래를 짰다.

성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면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진한 잔상이, 그 아린 기억이 이제는 삶을 끌어 주는 질긴 비단실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지나간 일들이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내 고된 삶 위에 오늘을 얹어 추억을 짜고 아련한 기억을 엮어 한필의 실한 비단이 되어준다.

오늘 나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빗줄기를 엮어 사랑을 짠다.

어머니는 내 삶을 짰고 그 다음 까지도 엮어주셨다는 생각이 이 나이에도 드는 건 돌아가신 후에도 자식의 앞날까지 들여다보고 계신 듯 그 이후까지 짜고 계시기 때문이다.

빗소리로 그대를 짭니다를 짓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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