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희 시인이 찾아가는 ‘시민이 시인이다’]

예순 즈음에

이 찬 귀

퍼즐처럼 그렇게 한 조각씩 물들어

계절은 완성될 것이다

평서문 같던 시간도

알밤 모으는 다람쥐처럼 분주해지고

조무래기들의 볼도

주홍 감 색조로 익어갈 것이다

누구든 지나왔고, 지나쳐 갈

청춘의 시간을 살포시 댓돌 위에 내려놓고

침잠하듯 지난 삶을 돌아본다

만남도 헤어짐도 일상이 되어

초연하게 맞이하는 무감각해진 모습에

새삼 놀랄 것도 없는

풀벌레 소리가 적막으로 들어서고

생의 뜨락으로 한 계절이 여울져 온다

다시 떠나야 할 길의 방향으로

구름이 먼저 불어간다

유은희 시인

비바람 눈보라 길을 걸어온 예순의 구두는 코가 깨지고 납작해져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밑창으로는 결의처럼 몇 개의 못이 박혀 들었겠지. 세상일에 새삼 놀랄 것도 없는 나이다. 그러므로 귀는 자연스럽게 순한 방향으로 열리게 되고 계절의 여울도 풀벌레 소리도 적막의 질감까지도 온전히 느껴지는 것이다. 바람보다 먼저 불어가는 생의 구름이 문득 자신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는 가을, 예순 즈음이다.

- 유은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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