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7명 매주 동화책 그리며 치유

인생 이야기 담긴 책‧달력 등 만들어

노양남 실무자‧유정화 강사 열정 쏟아

사진 왼쪽부터 노양남 실무자, 최명희·최윤정·안정순·김준례·김오묵·신초자·이용례 어르신, 유정화 강사.

“일찍 태어나 억울합니다. 늦게라도 재능을 찾았으니 원 없이 그리렵니다.”

주름살이 깊어지고, 나이는 어느덧 60을 훌쩍 넘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마음과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아 진다.

춘포면 봄나루작은도서관에서 ‘동화책과 함께하는 수채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이 그렇다.

안정순‧최윤정‧김준례‧김오묵‧신초자‧최명희‧이용례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새하얀 스케치북에 연필로 조심스럽게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수채화 물감과 파스텔, 네임펜 등으로 정성스럽게 색을 입힌다.

그림이라고는 어린 시절 나무 막대기로 모래 위에 새겨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 어르신들이 이제 스케치북을 물들이는 실력자로 우뚝 섰다.

‘동화책과 함께하는 수채화’ 프로그램은 노양남 봄나루작은도서관 실무자와 유정화 강사의 열정으로 탄생됐다.

어르신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노 실무자는 당시 춘포면민이었던 유 강사를 만났다. 어르신들과 ‘동화책을 보며 가볍게 그림을 그리자’로 프로그램은 시작됐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수채화 자격증을 취득한 유 강사의 재능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강사는 현재 동산동으로 이사 했지만 매주 목요일 어르신들을 위해 도서관을 찾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그림은 낯설고 어색한 존재였다. 처음 연습장에 스케치를 할 때만 해도 ‘못하겠다’며 연필을 내려놓거나, ‘그려서 달라’는 말 뿐이었다.

이런 어르신들의 투정(?)은 유 강사에게 통하지 않았다. 화이트보드에 스케치 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직접 그리도록 유도했다.

선 하나, 모양 하나. 삐뚤빼뚤한 스케치가 한 개, 두 개 완성됐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지금은 동화책을 보고 도화지에 거침없이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맏언니이자 그리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안정순 어르신(83)은 “수채화 물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그림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라며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도서관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며느리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김준례 어르신은 “자녀들에게 칭찬 받을 일이 생겼다. 부끄럽지만 행복했다”면서 “이런 재미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고, 일찍 태어나 억울할 정도”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동화 속 한 장면을 그리고, ‘넉점반’이란 동화책을 재연해 만들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2022년 달력을 만들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고 시(詩), 하고 싶은 말도 담았다. 한 장 씩 보관하던 그림이 하나로 엮어져 집안의 가보가 됐다.

하반기에는 ‘엄마의 말’이란 동화책을 보고, 나만의 인생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

형제들의 학비를 위해 열심히 일만 했던 이야기.

논과 밭에서 일하고, 삼남매를 키워낸 이야기.

엄마에 대한 그리움 등.

어르신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내고 있다.

11월 둘째 주면 드디어 ‘인생 그림책’이 완성된다.

유 강사는 “처음에 연필과 붓을 들기 주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전문가의 향기가 넘치는 어르신들이 됐다. 눈이 침침해져 색을 선택하는 것도, 스케치 선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림을 완성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열정은 따라갈 수 없다. 존경한다”며 “어르신들도 그림을 그리며 치유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행복을 느끼며 계속 그림을 그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어르신들.

잊고 지낸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고, 몰랐던 재능을 찾고, 보이지 않던 자존감과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노 실무자는 “내년에도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한다. 시를 곁들인 시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아 기자

어르신들의 작품.

황정아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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