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에서 호랑나비와 함께 춤을

문화마을29 다이끄미

익산을 대표하는 문화 유산을 꼽으라면 단연 미륵사지와 왕궁터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석탑들이다. 하지만 미륵사지와 왕궁터만이 가진 매력을 꼽는 일은 익산시민에게도 쉽지 않다. 어쩌면 미륵사지와 왕궁터는 아직 오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들을 흔들어 깨울 방법은 없을까.

정해신 꿈벼리늘배움협회 대표는 아내와 함께 어양동에서 ‘책나라 어린이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오랫동안 아이들 성향을 파악해 진로를 상담하는 일을 해왔고, 생태 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봄이면 어김없이 미륵사지를 찾아 석탑 뒤쪽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에 500m가량 심어진 탱자나무 이파리들을 살핀다. 이파리 곳곳에 붙은 호랑나비 애벌레들을 보기 위해서다. 그는 20년 전부터 호랑나비를 키워왔다. 처음에는 딸들에게, 나중에는 서점을 찾는 꼬마 손님들에게 호랑나비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호랑나비 암컷은 탱자나무 잎에 알을 낳는다. 탱자나무 가시가 천적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흑갈색과 백색을 띄는데 멀리서 보면 새똥처럼 보이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나중엔 이파리 색과 같은 초록색으로 바뀐다. 그리고는 번데기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날개를 만들어낸 뒤 자태를 뽐내며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정 대표는 미륵사지 뒤쪽으로 이어진 이곳 탱자나무길이 호랑나비의 생태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에게 더 체계적인 생태 교육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미륵사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라고 하지만 미륵사지와 왕궁의 탑 두 개를 보고, 시간이 나면 잠시 국립박물관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게 현실이에요. 석탑 바로 옆 탱자나무길에 호랑나비 수천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걸 그냥 지나치는 게 너무 아쉽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태길을 따라 호랑나비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더해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등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인문학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하고 싶었다. 때마침 익산시 문화도시지원센터의 ‘문화마을29 – 익산을 부탁해’ 사업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머릿속에서 담아왔던 프로그램을 꺼내 보기로 했다. ‘미륵사지를 품은 생태환경 인문학, 미생인’은 그렇게 시작했다.

“진짜 해보고 싶던 프로그램이에요.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와 생태 그리고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어요. 또 같이 참여한 엄마들에게는 마음 치유를 해줄 프로그램도 같이 준비했어요.”

역사와 생태환경, 인문학을 함께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미륵사지와 왕궁을 찾아 백제 무왕대의 역사를 배우고 석탑을 만드는 체험을 해보도록 했다. 그는 “미륵사지 석탑의 옥개석을 이루는 곡선이 석탑임에도 마치 목탑처럼 부드러운 이유는 목조건축에서 석조건축으로 넘어오던 때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이런 것들을 알고 보면 석탑이 달리 보인다고 했다.

다음으로 탱자나무길을 찾아 호랑나비 생태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키워보는 기회도 가져보았다. 호랑나비 알을 가져다가 애벌레로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 생태 문제를 다룬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거나 가족관계를 돌아보는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도 키우고 가족관계도 돈독히 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과는 <잘 했고, 잘 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란 책을 함께 읽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5세에서 10세 정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SNS에 공지를 올리고 아는 분들과 자녀들을 초대했죠. 저도 마음만 있었지 처음 해보는 프로그램이라 실험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첫날 왕궁과 미륵사지를 찾는 프로그램에 생각지도 않게 많은 가족이 참여해 정 대표도 놀랐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 대해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보게 되고 지금까지 몰랐던 호랑나비와 곤충들의 생태를 접하면서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모르고 지나치면 모르는 것으로 끝나지만, 알게 되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자연 관찰과 창작동화 읽기로 이어지는 꼬마인문학은 아이들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석탑과 곤충과 꽃을 만들어보는 시간엔 아이들이 역사와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엄마들과 함께 한 책 읽기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위로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는 두 달 동안 미생인을 진행하면서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미륵사지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생태공원을 만들고 싶어진 것. 지금도 봄만 되면 시가 돈을 들여가며 가지치기를 하는 바람에 탱자나무 이파리에 매달려 있던 애꿎은 호랑나비 애벌레 수천 마리가 죽어 나가는데, 보기에만 예쁜 산책로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아름답게 공존하면서 서로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익산을 찾는 가족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고, 그 바로 옆에 생태 체험 공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미륵사지 가는 길에 생태 도서들을 모아놓은 책거리도 만들고 싶어요. 가족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있다면 지금처럼 잠깐 들러 석탑만 보고 지나가지는 않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미륵사지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은 익산시민 모두의 마음이다. 그러려면 미륵사지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넓힐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 대표의 이번 시도는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어렵게 첫발을 뗀 ‘미륵사지를 품은 생태환경 인문학, 미생인’ 실험이 내년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기를, 나아가 미륵사지에 생태공원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그의 꿈이 꼭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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