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나 읽어요....!”

‘부의 추월차선’

밥 먹고 맹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아내가 던져 준 책 이름이다.

“이거 읽었자나...?”

“언제 읽어..? 그것도 쬐꼼 읽다 말았지..?”

나의 반박에 아내는 단박에 말을 차단시킨다.

지난 과거 내가 한 일들을 아내는 낱낱이 알고 있다.

아내 앞에서 내가 우기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얹혀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는 하루 밥 세끼 정도 해결 할 수입이 나오는 까페 사장님이시다.

늙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내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언제부턴가부터 내 호칭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주 낮설고 생경스런 호칭이다.

예순 여섯! 올 해 내 나이다.

길거리 호칭이 아저씨에서 할아버지로 바뀌었다.

국가에서도 15 ~ 64 세 까지를 ‘생산연령인구’라고 하고 65세 이상을 ‘고령인구’ 라고 칭한다. 노인 기초 연금도 65 살부터 나온다.

2023년, 65세 노인인구가 950만 명.. 그 중 1명으로 나는 추가되고 편입되었다. 전방 GOP를 사수할 만 한 패기가 남아있고 군대스리가에 나가 쓰리쿼타 정도는 뛸 자신이 있어도 시쳇말로 ‘자격미달‘ 선수가 되었다.

인구의 4 분의 1 이 노인인 나라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등산이나 콜라텍도 하루 이틀이지 무얼하며 재미지게 산다는 말인가..!

스토리와 타이틀이 전혀 메칭이 되지 않는 영화,  Coen Brothers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처럼 이 나이에 총 들고 설치라는 말인가..!

은행이나 공직에 있던 친구들은 진즉 은퇴했고 교편을 잡았던 친구들도 거진 다 은퇴했다. 머리가 반 백인 친구들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완전 할아버지 다. 젊어서 재테크나 저축으로 착실히 모은 사람들은 별 문제가 않되겠지만, 나처럼 그 관리가 전혀 않된 사람들은 남은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야 마눌에게 얹혀 살기로 작정해서 망정이지만 백 세 시대에 내 친구들은 어디 가서 무얼 한단 말인가...! 맞벌이로 산 친구들은 그나마 낫겠지만 외벌이로 산 친구들은 그 연금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자식들 시집 장가는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생각하면 남의 일도 아니다.

“나라잃은 백성처럼 코 빠치고 생각만 하면 밥이 나온다요 술이 나온다요..!

시간 날 때 마다 그냥 책읽고 글이나 써봐요...!“

마눌은 내게 책읽기를 강요하지만, 사실 나는 손에서 책을 논지가 오래 되었다.

나보다 두 살 더 잡수신 ‘잡스’ 형님이 남기신 핸드폰이 내 유일한 놀이이자 친구다.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10시간 정도를 이 놈하고 논다. 가슴 뛸 일도 많지 않지만 왠만한 책들로 가슴 설레이는 일은 거의 없다. 책 대신 핸드폰이 대신하고 있고 핸드폰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한다. 디지털 중독이다. 디지털과 결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 불안과 초조는 디톡스(detox)로도 해결 할 수 없다.

평생 사업한다고 두 번이나 크게 말아 먹은 뒤부터는 나는 아내로부터 자유를 차압당했다.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지만 나돌아 다닌다는 것도 그닥 신나지도 않는다. 사람들 만나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눌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사는 게 제일 편하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사 깨우쳤다. 약간의 눈치만 보면 된다. 하루 밥 세끼 얻어먹는데 큰 지장이 없다. 이사 갈 일도 없지만 이사 갈 때 아내는 넉넉히 곰탕을 우려 내놓고 갈 사람이다. 아내는 내가 믿는 도끼다.

나는 전과가 있다. 그것도 전과 2범이다. 2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몇 권 팔렸는지 잘 모른다.

지식공감 출판사에서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전국 서점에 깔아 놓았다는 말만 들었다.

팔리지 않으니 얼마 안가 다 회수 되었을 것이다.  회수한 책들은 출판사에서 다 걷어다 내게 보내 주었다. 아내가 운영하는 ‘아프리카 까페’ 한 쪽 구석에 쳐박혀 있다. ‘돈키호테 와 날라리 벌’ 과 ‘바람바람바람’ 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고 이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강매로 몇 백 권을 사준 내 친구들과 동생들은 한 번만 더 책을 내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애정(?)하는 그 친구들은 그 책을 볼 때마다 숨어서 나를 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전과가 있는데도 마눌은 내게 책을 또 쓰라고 강요한다. 나의 능력을 아는 아내는 책으로 한 몫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는 내가 꼴 보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책을 다시 읽기로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면 열린신문에 쓸어 담기로 했다. 헤프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이니 내가 글을 쓰는 건 어려움이 없다. 다만 좋고 나쁨은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만 두라면 언제든 그만 둘 것이다. 오래 전에 쓰다 팽개쳐둔 3권 째 책을 쓰면 된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죽이며 사는 것 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노인이 되어 보겠다고 말하자 아내가 뒤통수에 한마디 덧붙인다.

“나이 먹는다는 게 뭐가 나빠요...부어 논 연금처럼 경륜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쓰면 되지...!

그리고 예순 다섯 살 할아버지부텀 지하철 요금도 꽁짜고 버스요금도 꽁짜고 얼마나 좋아요...! 노인 기초 연금 신청하러 면사무소에 가 봅시다. 차 준비 시켜요..!“

아내의 눈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2022 1. 16. 삼기 아프리카 까페 김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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