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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의 문학산책 - 오랜된 서랍유은희 시인의 문학산책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12.11 08:46

오래된 서랍

* 완도 청산도 출생
* 원광대 인문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 시집 [떠난 것들의 등에서 저녁은 온다] 외 디카시집 [수신되지 않은 말이 있네] 전자책 시집 [사랑이라는 섬]
* 국제해운문학상 대상 수상 외
* 인문라이브러리, 시교실, 길위의인문학, 청소년독서회 등 강의

나무 서랍장에

꽃무늬 블라우스와 몸빼가 누워있었다

팔다리 접은 어머니는 사라지고 옷만 남아 있었다

서랍이 열리는 순간

옷을 빠져나온 나비 한 마리 날아갔다

그것은 분명 우물가 미루나무나

방죽 옆 논둑 콩잎에 가 앉았을 것이다

서랍 속 나비는 아직 남은 체취를 빨아들이고

어머니에게 뿌리내린 자잘한 꽃들이 잠깐

들숨을 쉬는 듯 부풀어 보이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한밤중 서랍에서 관절 소리가 났던 건

오래 누운 옷이 잠깐 뒤척였을 거라는 생각에

꽃무늬 블라우스와 몸빼의 팔다리를 조심히 고쳐 만졌다

어디 배기는 데 없는지 살피고는 가만 서랍을 닫았다

불을 끄고 뒤척이다 잠이 들 무렵

내 숨소리에 나비 날갯짓 같은 또 하나의 숨소리가

살포시 포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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