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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칼럼 - 공정과 상식이라는 줄다리기송태규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4.04.08 08:51
심지창의.융합교육원 대표
시인

오합지졸이었다. 벌써 지난해 봄 일이다. 이웃 서너 교당이 모여 화합한다는 마음으로 인화운동회를 했다. 먼저 장기 자랑을 하고 족구 경기를 벌였다. 어린이들의 재롱에 실컷 웃고 네트 위를 오가는 공 다루는 묘기에는 탄성이 터졌다. 이제 마지막 종목인 줄다리기 순서였다. 우리 교도님들 덩치가 만만치 않아서 모두 일찌감치 얼굴이 환했다.

시작하기 전 작전을 짜고 파이팅을 외쳤다. 막상 호루라기가 울리고 엉거주춤하는 사이 상대는 일사불란하게 줄을 당겼다. 허를 찔린 우리는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서넛은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방심의 대가였다. 한번 당하고 난 뒤 기운을 모아 수습하려다 외려 상대의 기세에 눌려 내리 한 판을 더 내어주고 말았다. 합심의 위력을 통감했다. 줄다리기할 때 합심은 호흡을 함께 하며 열심히 당기는 일이다. 비록 인화운동회라지만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해 합심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한 패자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받는다. 이럴 때 승패는 차후 문제이다.

학교에서 체육대회 할 때 학급 대항 줄다리기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배정한다. 다른 종목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줄다리기에서 우승하면 누구나 공책 한 권은 받을 수 있으니 당연히 선생님과 학생들은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때때로 과열하기도 한다. 담임 선생님은 평소 경험대로 체격 좋은 학생을 앞에 세우고 응원을 지휘한다. 여기까지는 서로 거기서 거기다. 문제는 호흡이고 구령이다. ‘여엉차 여엉차’ 하는 반이 있는가 하면 “영차영차” 빠른 리듬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지도자인 담임의 눈빛에 따라 학생들 마음이 달라진다.

내가 담임을 맡았을 때 줄다리기 때만 되면 당부했다. “마음을 모으고 호흡을 맞추면 이길 수 있다. 내 구령에 따라 최선을 다하자. 우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상대가 더 강하면 어쩔 수 없다. 있는 힘을 다하고도 졌다면 모든 책임은 담임인 내 몫이다.”

어느 해 체육대회 날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줄다리기에서 문제가 터졌다. 승부 욕심이 지나쳤는지 공명심을 세울 생각이었던지 어느 반 실장이 담임 선생님도 모르게 꼼수를 부렸다. 초과한 인원을 응원하는 척 세웠다가 경기를 시작하면 뒤에서 슬쩍 손을 보태게 했다. 심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울어가던 승부가 뒤집혔다. 아무도 몰랐거나 모른 척했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뒤늦게 상대 학급 선생님이 항의했고 영문을 몰랐던 담임은 절대 그런 일 없다며 되레 화를 냈다. 결국 확인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한 선생님 때문에 언쟁이 벌어지고 둘은 벽지 들뜬 자리처럼 틈이 생겼다.

심판이 바로 양쪽 실장을 불러 정황을 파악하고 부정이 개입한 몰수 패를 선언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조금만 침착하고 실장에게 한마디만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고 나서 이겼어도 결과에 승복했더라면 공정하고 상식적인 해결이 되었을 일이다. 그럴 때 비로소 공동체 안에 ‘공정의 가치’가 실현된다. 지도자가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운동장을 기울이면 공동체는 술렁이고 골이 팬다. 줄다리기에서도 자기편 숫자를 늘리거나 그런 걸 슬쩍 눈감으면 공정이나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지거늘 하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는 말해서 무엇하랴.

나라가 온통 줄다리기로 한창이다. 당시 실장은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소식이 끊겼다. 권력을 이용하여 입 틀어막고 벌이는 오합지졸을 그는 “공정하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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