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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영 칼럼 - 김민기, 이상현, 안도현, 그리고 또 누군가윤찬영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4.05.27 08:45

김민기, 이상현, 안도현, 그리고 또 누군가...

기찻길옆동네책방 주인장

최근 서울 대학로 ‘학전’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김민기 학전 대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옛 이리 함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퇴각하던 인민군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10남매의 막내이던 김 대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였다.

그의 어머니는 연희전문에 1기로 입학한 엘리트였다. 조선인 차별에 맞서다 퇴학을 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조산원(산파) 자격증을 땄고, 이리 함열에서 아기를 받으며 10남매를 홀로 키워냈다고 한다.

그는 1963년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하니, 어쩌면 열두 살 무렵까지 이리에서 살았을지 모른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 스무 살에 세상에 내놓은 <아침이슬>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혀가서 두들겨 맞았다던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내내 지독한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엔 인천 부평의 봉제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가 아는 노래 <상록수>도 이 무렵 동료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지은 노래라고 한다. 스물일곱이던 19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제작하고는 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다행히 별탈없이 풀려난 뒤 그는 ’밑바닥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고향인 이리로 돌아와 머슴살이를 하며 농사를 배웠다. 하지만 감시 탓에 얼마 못 가 다시 고향을 떠나 김제와 경기도 전곡 등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박정희정권의 몰락과 짧았던 서울의 봄을 멀리서 지켜봤다. 충남 보령에서 탄광노동자로 산 것도 이 무렵이었다.

김영규 한국예총 익산지부장은 ‘익산 아카이브 왕도인 구술사업’을 할 때, 1980년대 초반에 김민기가 자기 집에 숨어 지낸 일을 조심스레 꺼냈다.

“...(김민기가) 저희 집 바로 옆에께서 살았었거든요. 중앙초등학교 출신이고. 근데 그 5.18 때 긴급조차 5호 위반자가 김민기라고요. 그래서 전두환 때죠. 수배령이 내리니까 도망다녔어요. 도망 다니다 우리 집에 와서 잠시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인자 익산에 있어야 되거든요.”

(<야이기로 듣는 이리ㆍ익산 그리고 사람들Ⅰ>)

안타깝게도 김민기와 익산의 인연은 더는 알려진 게 없다. 없던 인연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온 나라가 김민기 열병을 앓는 가운데서도 정작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은 이렇다 할 만한 이야깃거리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는 꼴이 못내 안타깝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우영우 김밥’ 브랜드 글씨체는 이상현 작가가 개발한 ‘완도희망체’다. 우리나라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1세대 캘리그라피스트로 꼽히는 그는 원광대학교 서예과를 나왔다. 비록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서예과다. 이곳에서 붓글씨를 갈고 닦았을 그는 영화 <타짜>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의 로고 타이틀을 비롯해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드라마와 영화, 광고 그리고 기업과 제품의 캘리그라피 작업을 진행했다. 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캘리그라피스트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엔 안도현 작가의 시 ‘연탄 한 장’도 나온다. 우영우 변호사가 다니는 거대 로펌에 홀로 맞섰던 어느 인권 변호사가 재판에서 지고 난 뒤 우 변호사를 불러 ‘연탄 한 장’을 들려준다.

“또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알다시피 안도현 작가도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으로, 다시 4학년 때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연거푸 당선되었다.

대학 졸업 뒤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했다가 얼마 못 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을 당하고, 5년 뒤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했는데, 그 무렵 세상에 내놓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는 지금까지 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는 3년 전 쓴 <고백 - 안도현의 문장들>이란 책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해, 시를 쓰는 비밀을 간직해 살기 시작하던 나의 스무 살에게 이 책을 건넨다.”

한 드라마에 이렇게 이 도시와 인연이 깊은 인물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익산이 낳은 인재들이 많다는 뜻이다.

어제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안도현 작가를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에게 익산은 어떤 의미였고, 또 작가로서의 삶에 이 도시는 영향을 미쳤는지 묻고, 들었다.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인생에서 가장 새파랗게 팔팔하던 시절을 익산에서 살았다”면서 “익산 살 때는 진짜로 익산이 고향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익산에 온 것 자체가 시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김춘수적인 시 쓰기를 배웠다. 언어를 갈고 닦는 게 중요하고, 절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익산에 와서는 판소리 가락 같은 분위기들이 알게 모르게 딱 보였다. 그래서 그걸 많이 훔쳤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경상도식 방식과 전라도식 방식을 짬뽕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습작을 했다.”
그와 나눈 대화가 두고두고 좋은 기록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다음 주 수요일(5.29) 낮 2시엔 이상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익산에서 삶의 한때를 보냈던 이들에게 익산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까. 몸과 마음 모두 떠난 지 벌써 오래라고 탓하기보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을 그 따뜻했던 기억을 다시금 불러내 보는 건 어떨까. 알고 보면 익산은 가진 게 참 많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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