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줘서 고맙고, 고생시켜 미안해요.”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보살펴주니 감사해요.”

62년을 함께 산 80대 노부부가 아련하게 나누는 사랑의 인사다.

영등동에 사는 이재형(84)‧이군자(83) 부부는 다정하고 금실 좋기로 소문난 원앙 부부다.

26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남편 이재형 씨의 모습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21살 어린 나이에 금마면 산골 마을로 시집 온 여자, 결혼 후 6개월 만에 군에 입대한 남자는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신앙생활로 어려운 환경에서 3남 3녀를 낳아 온 힘을 다해 가정을 꾸려나갔다.

부인 군자 씨는 재형 씨가 농사지은 작물과 산에서 직접 뜯은 나물을 머리에 이고 이리 시내로 보따리 장사를 하며 돈을 벌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 당시 연년생인 6남매의 육성회비를 내려면 버스비도 아껴야 했다.

군자 씨는 “그땐 구간별로 버스비가 달랐다. 요금이 저렴한 구간만 버스를 타고 다 걸어 다녔다”며 “밤늦게 집에 와 남편과 밥 한 숟가락 뜨면 눈물이 흐르곤 했다”고 회상했다.

재형 씨도 일할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성실함과 꼼꼼한 성격 덕분에 청년회장과 이장을 맡아 마을 일에도 힘을 보탰다. 글쓰기를 좋아해 매일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기록하기도 했다. ‘업무일지’라는 이름의 일기는 이제 가보가 됐다. 또 ‘도내골 이야기’라는 마을의 역사를 적은 책을 내기도 했다.

36년 전 영등동으로 이사를 온 부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온갖 세상의 풍파를 견뎌가며.

그런 부부에게 군자 씨의 중풍은 날벼락과도 같았다. 이제 마음 편히 살자는 생각이 들던 찰나의 일이다.

재형 씨는 “하늘에서 큰 돌이 나를 짓누르는 듯 했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아내를 잃을 까 걱정이었다”며 “하나님에게 살려만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재형 씨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군자 씨는 재활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걷게 됐다.

하지만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지고, 척추가 주저앉는 등 또 다른 고통을 겪어야 했다. 3년 전 재형 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넘어져 오른쪽 다리뼈가 모두 골절돼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재형 씨는 “병원에서 수술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근데 치매까지 오더라. 안되겠다 싶어 집으로 왔다. 다행히 치매증상은 호전됐다. 이렇게라도 옆에 있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어렵게 키운 6남매는 효자, 효녀가 따로 없다. 영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큰 아들 석인 씨와 다섯 째 정화 씨를 제외하곤 석진, 연희, 명숙, 석문 씨는 익산에 살며 부모님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온다.

재형 씨는 “아내가 ‘미안해, 당신 밥하게 해서’라고 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고생 시켜 미안하다. 팔불출 같지만 우리 아내는 나에게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미소 지었다.

자녀들에게 ‘헛 욕심 부리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가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부부.

지난 16일 영등동 한 아파트로 이사 한 부부는 새 집에서 새로운 사랑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참이다.

황정아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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