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가에 가나 봐라!”

부제: 아빠가 뿔났다

원광대 LINC+사업단 지역선도센터 담당

시아버지가 오라이라고 외치며 차 궁둥이를 두 번 탕탕 때리시자 여자와 남자를 싣은 차가 출발했다. 은색 소나타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을 벗어나 전라북도 익산으로 향하는 길은 230km에 달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있다면 공감각적 거리는 그 1/4로 줄어든다. 이예!

익산 본가에 도착하니 이집의 상전인 고양이 레오가 남자를 보자마자 저음으로 으르렁댔다. “낯선 이가 영역에 무단침입하니 짐의 심기가 매우 언짢구나”라는 뜻이다. 여자가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자 앙 소리치며 찰싹 뺨싸대기를 날렸다. 나쁜 놈, 결혼 전까지 한 방에서 내가 화장실 똥도 치워주고 장난감이며 간식도 아낌없이 사서 엄마한테 많이 혼났는데 키워준 은공을 이렇게 갚다니! 진노하신 레오는 방을 나가 막 안방에서 나오던 여자의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아버지가 레오를 안아올리며 어르자 깊은 분노가 스르르 사라졌다. 이번에는 여자의 아버지가 노했다.

“막둥이 아직도 살 안 뺐냐? 빠지기는 무슨 더 쪄서 왔고만, 너는 살을 빼야한다고 아빠가 말 안 했냐! 너는 어째 아빠 말을 한 마디도 안 듣냐!”

지면에 옮기기에는 다소 직설적인 거친 걱정들이 쏟아졌다. 여자는 오랫만에 보는 정든 고양이에게 뺨도 맞았고 익산에 살면서도 가끔 볼까말까한 아버지에게 꾸중과 비난을 들으니 서러워졌다. 나는 아빠의 모교에서 일하며 늘 아빠 생각을 하는데 아빠는 내 외모가 변한 거로 화내다니, 노력도 하고 있는데 그 노력은 궁금해하지도 않으시고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여자의 어머니가 정성껏 차린 설 기념 만찬에서 전 하나 나물 한 오라기도 입에 대지 않았다. 명절 때나 보는 설하멱적도 눈에 들어왔지만 여자는 물만 줄창 마셔댔다.

여자는 그가 스스로 일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그 성과, 대외활동을 비롯한 사회인으로서 비춰지는 것보다 외형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평가받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버지는 사십줄에 낳은 늦둥이 막내딸이 2012년 기자를 한다고 대전에 간 이후로 비만의 늪에 빠진 게 늘 걱정스러웠다. 몇 년이 지나고 결혼식을 할 때까지 딸의 덩치는 필요이상으로 건장해져만 갔다.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인데 건강과 멀어지는 듯한 딸이 걱정되고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는 딸이 야속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장 고집세고 다혈질인 사람들이 충돌할 때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은 일단 둘을 떼어놓는 것이다. 여자는 엉엉 울며 남편의 차에 올랐다. 뒤에서 아버지의 “야, 살빼라!”라는 고함이 들려왔지만 여자는 건성이지만 진실성 있어보이도록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본가에 오나봐라'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제일4차아파트에 도착하고 출입문을 지날 때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하의 헬스장 운영을 재개한다는 공지문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조용히 핸드폰으로 공지문 사진을 찍었다.

과연, 여자는 본가에 다시 가지 않았을까? 안 가기는 무슨, 원광대학교에서 준비 중인 소태산 영화제와 숭산 총장 기념 학술대회(가칭) 준비를 위해, 또 아버지 사업을 위해 부단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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